1866년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바예-인클란은 20세기 초 스페인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에스페르펜토esperpento라 불리는 독특한 미학을 창출하였다. 에스페르펜토는 못 생긴 것,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 기괴하거나 괴물 같은 것을 통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출하려는 일종의 그로테스크적 사실주의로 바예 인클란은 이 새로운 방식의 미학을 통하여 혼란스러웠던 당시 스페인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성찰하고 있다. 시, 소설, 희곡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독특한 미학 세계를 구축하여 당시의 스페인 문화계와 유럽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드리드 아테네오 문예 재단의 회장과 주 로마 스페인 국립 예술 한림원 의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는 국제 문인 협회 스페인 지부장과 ‘문화를 위한 국제 문필가 협회’ 최고 위원 등을 지냈다. 1936년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고향 갈리시아에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보헤미아의 빛Luces de Bohemia』 『무도회의 화요일Martes de carnaval』 『경이로운 등불La Lampara maravillosa』 등이 있다.
역자 : 김선욱
김선욱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누만시아/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등이 있으며, 「「거짓말 같은Parece mentira」의 주제와 연극성」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때 유명한 연설가였고 시인이었던 막스 에스트레야는 빚만 잔뜩 지고 눈이 먼 가난뱅이가 되어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글을 써서 푼돈이나마 벌어보려고 애쓰던 그는 지인인 돈 라티노와 함께 마드리드 거리를 헤매 다닌다. 프롤레타리아들의 시위가 발발한 거리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지고 창녀와 사기꾼, 부패한 경찰,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와 아무런 이유 없이 목숨을 잃는 시민들이 뒤엉킨다. 막스는 술에 취한 채로 경찰서에 끌려가 시위를 벌이다 구금되어 사형을 앞둔 노동자들을 만나고 이들이 잡혀 들어올 수밖에 없는 스페인 사회를 비관한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막스는 옛 친구였던 장관을 만나 경찰의 권력 남용에 항의하려 하지만 장관은 문학에 심취했던 시절을 낭만적으로 회상하며 도리어 그에게 원조를 약속한다. 막스는 생활고 때문에 이를 받아들인다. 다시 돈 라티노와 거리를 헤매던 막스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다 숨을 거두고 뒤이어 그의 아내와 딸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고 만다.
성스러운 말씀―시골 마을의 희비극
후아나 라 레이나는 뇌수종에 걸려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의 아이를 수레에 싣고, 장이 서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후아나 라 레이나가 갑자기 죽자 그녀의 남매인 성당 집사 페드로 가일로와 마리카 델 레이노는 수레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다 결국 3일씩 교대로 수레를 맡기로 한다. 수레를 끌고 축제에 간 성당 집사의 부인 마리 가일라는 수레를 남에게 맡기고 야옹대부라 불리는 사내와 정을 통한다. 여자 거지가 맡은 수레는 주점으로 가게 되고 불구의 아이는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다 결국 죽고 만다. 한편 성당 집사는 아내가 바람났다는 소문이 퍼져 괴로워하다 딸과 통정하려 하는 등 이성을 잃어버린다. 이튿날 아이의 시체는 마리카 델 레이노의 집 앞에서 돼지에게 먹힌 채 발견된다. 마리 가일라는 불륜 행각이 발각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오고 광기에 빠진 사람들은 그녀를 발가벗겨 춤추게 만들고 수레에 싣고 교회로 온다. 페드로 가일로는 종탑에서 몸을 던지고 다시 일어나 예수의 성스러운 말씀을 라틴어로 읽는다. 이것이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의 이성이 돌아오고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은빛 얼굴
‘피도 눈물도 없는 집안’으로 통하는 귀족 몬테네그로 일가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통행로인 란타뇬 일대에 통행 금지령을 내려 가축상을 비롯한 사람들의 원성을 산다. 돈 후안 마누엘 몬테네그로의 둘째 아들 돈 미겔은 준수하게 생긴 젊은이로 친절하고 쾌활한 성품을 가졌으며 ‘은빛 얼굴’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은빛 얼굴은 돈 후안 마누엘의 대녀(代女) 사벨리타를 사랑하지만 돈 후안 마누엘 역시 그녀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 통행권 문제는 점점 더 몬테네그로 일가와 다른 사람들 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사벨리타의 친척인 수도원장 부부와도 커다란 갈등을 빚게 된다. 광인인 푸소 네그로에게 납치당한 사벨리타를 구해준 돈 후안 마누엘은 결국 그녀를 곁에 두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도원장과 은빛 얼굴은 경악한다. 돈 후안 마누엘과 수도원장은 서로를 불경하다며 몰아붙이고 돈 후안 마누엘은 자신이 악마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름을 의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