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계셔! 창문 밖에는 차가운 햇볕이 비치고 있었다.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날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을 거야. 엄마가 오시기 전에 죽을지도 몰라. 그러면 리틀이 죽었을 때 친구들이 들려주었던 식으로 예배실에서 장례 미사를 가지겠지. 모든 친구들이 검은 예복을 차려입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미사에 참석할 거야. 웰스도 역시 거기에 참석하겠지만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을 거야. 교장 선생님께서도 검고 금빛의 법의를 입으시고 그곳에 참석하시겠지. 그리고 계단 위와 영구대 주위에 노란 긴 촛불이 켜질 거야. 그런 다음 그들은 관을 천천히 예배실 밖으로 운반해 보리수가 양편에 줄지은 중앙 가로수길을 지나 마을의 작은 묘지에 묻을 거야. 그러면 웰스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하겠지. 그리고 천천히 조종이 울리겠다.
기숙학교에 다니던 유년기부터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5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일화들은 주인공 스티븐이 예술가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어가는 과정의 안과 밖을 그려보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세상은 정치와 종교가 삶의 두 버팀목인 혼란스런 아일랜드. 감수성 예민한 스티븐은 그 속에서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겪고, 극심한 종교적 죄의식에 시달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모든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조국과 종교를 등진 유배생활을 자처해 나선다.
이 성장소설에 방점을 찍게 하는 것은 그 내용 뿐 아니라 형식 덕이기도 하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 스티븐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작가는 주저없이 그의 상념으로 독자를 인도하여 '옆길'로 빠진다.
또한 스티븐의 의식의 흐름은 주로 그의 감각에서 촉발된다. 그가 무언가를 만질 때, 볼 때, 맛볼 때, 들을 때,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떤 기억과 상상들이 퉁겨져나오는 것이다. 그 다면적이고 풍성한 실타래를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섬세한 소년의 마음속에서 사건들이 기억으로 재구성되는지, 어떻게 소년의 감수성이 그를 예술가로 이끌어가는지를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