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대비다. 한쪽으로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무덤인데, 다른 쪽 끝에는 장방형 연못이 길게 누웠다. 경지(鏡池). 거울 ‘경’ 연못 ‘지’. 본래 면목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미처 씻어내지 못한 마음자락, 거울에 비춰보며 마저 씻어내라 이르는 것일까? 하기야 수십 년 찌든 때를 어찌 한 순간에 벗겨낼 수 있으랴. 연못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노라니 마른 잎사귀를 떠나보내며 배롱나무 그림자만 못내 쓸쓸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개심사를 일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라고 했었던가. 그의 견해에 이견을 세운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속세든 산중의 집이든 몸집을 크게만 부풀리는 것으로 능사를 삼는 요즘, 이 절집은 아담하고 소박한 성품 그대로 오가는 마음을 끌어당긴다는 거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할 수는 없으되 못난 주춧돌 하나에도 천년 세월이 겹겹이 감겨 있고, 한껏 단아한 품새의 당우(堂宇)들 또한 소박한 맛으로 속인을 맞으니 여느 대단한 사찰이라 하여 이보다 넉넉할 것인가. --- pp.43~44, 「상왕산 개심사」 중에서
摩河大法王 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 무단역무장 本來非白 본래비조백 隨處現靑黃 수처현청황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 법당
희미하게 빛나는 법당의 주련을 읽는다. 새벽의 푸른빛에 드러나는 힘이 실린 글씨, 홀로 깨어 새겨보는 게송은 새롭다. 부처는 대소장단의 분별 이전의 존재, 선과 악의 구별 또한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련은 일러준다. --- p.141, 「마니산 정수사」 중에서
세조의 원찰로 조선시대 교종의 총본산인 봉선사는 한글과 인연이 깊은 절집, 그 인연의 고리에 운허(雲虛) 법호를 가진 스님이 있다. 운허.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한자경전의 한글화를 일생의 목표를 삼았던, 그래서 부잣집에서 다시 태어나 그 돈으로 팔만대장경을 모두 한글로 펴내겠다는 서원을 가졌던 큰스님. 대장경의 한글화에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던 스님의 흔적이 친히 쓰신 ‘큰법당’이란 대웅전 편액과 한글 주련으로 남아 있음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로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