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마치며
인혜야, 미숙아!
조금 전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마쳤다. 앞으로는 너희 두 사람을 불러놓고 이것저것 대답하기 거북한 것을 캐물으며 괴롭히지 않을 테니 너희들도 이제는 좀 쉬어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내가 그동안 너희들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 긴 시간동안 껴안고 있었던 것은 역사의 속성 때문이다. 너희들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역사란 일정한 주기를 단위로 반복하면서 진화한다."는 통설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화란 그 폭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역사는 한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대중과 호흡하며 하루하루 일상의 삶을 지탱해 가는 한 개인의 앞날이나 단체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단다.
이런 가정 하에서 지난 시절을 되돌아볼 때, 1979년 발생한 10?26사태 이후 도래한, 속칭 5공시대로 불려온 1980년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반복하게 하면서 진화된 역사를 보여주었는가? 이런 물음 아래서 창작된 소설이 너희들의 수기나 다름없는 〈장군의 여자〉 1, 2권이다.
이 소설은 1980년대 '장군의 안마사'로 불려 다니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온 인혜 너의 이야기와 너의 중학교 시절 짝꿍, 미숙이의 행상기(行商記)를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촘촘하게 엮어본 장편소설이다.
너희 두 사람도 잘 알겠지만 요사이 우리 사회는 100만 명이 넘는 청년 백수들의 문제로 사회 전체가 우울기(憂鬱期)에 처해 있다. 좀 과도하게 표현하면 사회적 역동성이 보이지 않는, 축 쳐져 있는 상태이다. 또 날만 새면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녹지마저 주택단지로 형질을 변경해 20~30층이 넘는 아파트를 끝도 없이 지어대지만 도시 변두리 영세민들과 재개발지대의 경제적 약자들은 한때 너희 부모님들처럼 서울 도심 빈민가에서 서울 변두리로, 또다시 수도권 지역 변두리로 밀려서 나중에는 인천, 부평, 송내, 시흥, 김포 등지의 서민아파트 주민들 대다수가 어느 날 갑자기 인천시민이 되고 부평구민이 되고 시흥, 김포시민이 된 사람들이다.
특히 서울 변두리 강제철거민들을 대거 수용하기 위해 1970년대 말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배밭 지대와 복숭아밭 지대를 포크레인과 불도저로 밀어붙여 국내에서 서울 잠실지구 다음으로 대단위 영세민아파트단지를 조성한 구월동 주공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그 10평에서 13평정도 되는 아파트를 뺏기지 않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기 위해 강남의 주택공사 본사로, 또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원정 농성을 벌이며 정부의 주택정책에 몸으로 항거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공간 속에 〈인천〉이라는 도시가 주무대로 등장하고 있어 수도권이나 인천에서 1980년대를 살아온 시민들에게는 더욱 의미 깊게 읽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전환기에 가정경제의 주역으로 활동해 오던 너희 부모님들이 노령화되고 불구화되고 또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던 너희 오빠들마저 감옥이나 군대에 강제 징집된 사이, 집에 남아 있던 너희 어머니나 너희 같은 딸들이 〈가정〉이란 삶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장군의 안마사, 유통회사 판매직 사원, 파출부, 청소부, 노점상, 시장 바닥의 좌판상인 등으로 삶을 이어온 우리 사회 어머니, 아주머니, 누나,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100만 명이 넘는 청년백수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서양 영화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자기 자식들에게 조용히 혼자 앉아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입식 책걸상과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1인 1실용 방한 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젊은 시절을 얼마만큼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오늘의 우리 사회를 건설하는 데 초석 역할을 해 왔는가 하는 시대적 정황을 뒤돌아보게 해주는 소설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삶의 1차적 정주공간인 주택문제로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던 서울의 봉천5동 101번지 달동네, 사당동 총신대학 뒤 달동네, 그리고 정부의 주택정책에 이끌려 부천이나 인천까지 밀려와 살던 서울 변두리 영세민들의 가정사와 너희 또래 자식들의 사회진출 과정을 그 당시에는 직장 일에 떠밀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 인생의 한 자락을 정리하듯 마무리해 보았다.
그러면서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나 부모의 품안에서 왕자나 공주처럼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라 최고학부까지 마치고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지만 100만 청년백수의 취업 존(zone)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쳐 있는 내 자식 또래의 우리 사회 신세대들에게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생은 꼭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와 학사나 석사 학위를 취득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말을 들려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힘들게 썼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니까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듯한 느낌이 들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난 시절 이야기를 "지금 새삼스럽게 또 다시 들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도 받는다. 그러나 편식하듯 재미, 적성, 대입수능시험, 경제성, 효율성 따위 키워드에 맞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온 내 자식 또래의 신세대들에겐 한 시대의 단층 같은, 그렇지만 아직도 그 시대의 주역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마치 외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처럼 생뚱맞은 질문이나 해대며 저희 아버지 어머니들이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소통도 되지 않는 이 땅의 신세대들을 위해 고집스럽게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껴안고 있었단다.
너희 두 사람도 긴긴 학창시절이 있었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1960년대 이후부터 약 100만 명에 이르는 학령인구가 실질적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1년에 70만-80만 명씩 학령인구 권에서 벗어나 취업 존(zone)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옮긴다. 다소 개인차는 있겠지만 4~5세 때 부모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들어가 초등, 중등, 고등, 대학,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이들이 취업하기 위해 학령인구 권을 벗어나는 데는 10여 년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이 사실을 내 자식을 낳아 대학과 대학원을 보내보면서 '학령인구'라는 어휘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개인사적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단다. 이처럼 지난날의 나의 개인적 삶은 그토록 두서없고 분망했기 때문에 나는 너희 두 사람을 만날 당시에는 이런저런 사유로 이 소설로 펴내지 못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펴낼 수 있었다는 것을 후기로 남긴다.
아무튼 인혜, 미숙이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가 10여 년간의 학령인구 권에서 빠져 나오는 요즘의 내 자식 또래 신세대들과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닥다리들', 또는 '수구꼴통들'이라고 부르는 시니어 세대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다면 여태껏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버리지 못하고 20여 년간 나 혼자 껴안고 가슴 아파한 그동안의 내 마음고생이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너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인천문화재단 '다년지원 공모 장편소설'로 뽑아준 윤영천(문학평론가/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이원규(소설가), 도종환(시인), 이현식(문학평론가/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심사위원님들과 창작기금과 출판비를 지원해 주신 인천문화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너희 두 사람도 내내 잊지 말고 그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라.
올해 들어 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청해당의 아침〉이 KBS 라디오극장 드라마 작품으로 선정되어 6월 1일부터 국내는 KBS AM 972khz로, 국외는 KBS 한민족방송망을 타고 중국 동북3성?러시아 연해주?사할린?일본 등지로 6월 한 달 내내 하루 2회씩(오전=02:00~02:20분 / 오후=5:40~6:00) 방송되는 데다, 내년엔 우리나라 초?중?고교에서 반세기 이상 사용해 온 종이책 교과서가 모두 전자책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 소설도 내년에는 〈청해당의 아침〉처럼 〈오디오 북(소리책)〉과 〈전자책(e-book)〉으로도 발간되어 내국 국민들은 물론 해외 거주 1천만 교민들과 동포들에게도 너희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저자인 나로서는 '솔 심어 정자'라는 옛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KBS 한민족방송은 내가 인혜, 미숙이 너희 두 사람을 만나기 직전인 1981년 5월부터 1984년 4월까지 하루 30매씩 방송논설과 교양프로그램 원고를 만 3년 동안 3만 매 가량 집필하면서 작가로서의 확고한 입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준 〈자유의 소리방송〉과 연계되어 있던 국영방송으로, 우리 한민족의 근원적 정서와 생각 그리고 역사가 녹아 있는 문학작품이나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과 사건 등을 드라마로 각색하여 사상이나 체제를 초월해 한민족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을 모색하며 민족동질성 회복을 고양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이 주축을 이루는 방송이라 나에게는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단다. 너희들도 이 작품이 세계 곳곳에서 한민족의 얼을 찾는 동족의 가슴속으로 널리널리 전해질 수 있도록 마음으로라도 기도하여라. 이만 후기를 끝내련다.
2010년 5월
인천 만월산 자락에서 --- 후기 중에서
인간은 원래 피부를 맞대면서 배태되었고, 어미의 자궁 속에서도 서로 피부를 맞대고 있었기에 어려울 때는 남녀가 피부를 맞대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지. 또 아름답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긍정의 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지면서 삶 자체를 황색에서 핑크색이나 푸른색으로 변모시키기도 하지.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남성의 뜨거운 사랑과 힘찬 육체가 인간의 상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묘약이 될 때가 있고, 남성에게는 여성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 웃음, 고운 마음씨가 천군만마보다 더 무서운 위력을 보일 때가 있지. 그래서 예로부터 여성을 군사목적이나 첩보목적을 위해 많이 활용해 오곤 했는데, 요사이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운 몸과 무언가를 꼭 달성하려고 하는 의지가 거래나 계약에 의해 산업용이나 사업용으로 많이 활용되곤 해. 이것이 윤리적인 측면에선 아직도 거센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일본 같은 나라에선 이미 보편화되어 있고 우리나라도 이젠 좋든 싫든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와 있어. 이것이 현대산업사회의 일상화 된 한 단면이야. 미스 오, 우리의 사업을 위해 과감하게 윤리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 p.78
양산댁은 배추 속고갱이 같이 해맑고 예쁜 딸을 밖으로 내돌리는 게 걱정인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다. 얼굴만 좀 예쁘다 하면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는 시절에, 저 어린것이 돈 생긴다고 남자들 꼬임에 빠져 어디 으슥한 곳에라도 불려가 몸이라도 망치고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려오는 것이다.
양산댁은 집을 나와 단애 같은 산 101번지의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성모님께 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돈 생기고 권력 생긴다면 물간 동태눈깔처럼 썩어문드러져도 내 딸 미숙이만큼은 들판에 핀 한 송이 야생화처럼 제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 피우다가 생을 마감하게 해 주소서, 하고.
---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