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던 2003년, 엄마 손에 의해 끌려간 어린이환경캠프에서 건성으로 비디오를 보다가 삼보일배 장면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느끼고 '새만금'이라는 세 글자를 기억 속에 저장해 둔다. 2005년부터 매년 여름 새만금 바닷길을 걸으며 처음엔 아름다움에 반했고, 그다음엔 사라지는 것들을 안타까워했고, 나중엔 죽음과 파괴에 대해 분노했다. 그 과정에서 지식과 과격함을 겸비한 생태주의자로 삼단 변신하게 된다. 중3 때인 2008년엔 ‘청소년 습지연구 공모전’에서 「한강 하구 모니터링 보고서」로 해양수산부장관상을 받는다. 지금은 미국 버몬트 주 산골짜기의 ‘Putney School’이라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새벽에 교내 농장의 소똥을 치운 뒤 황소처럼 교실로 달려간다. 공부가 안 되거나 울적할 땐 학교 숲을 곰처럼 어슬렁대기도 한다. 교내 '지속가능 클럽' 회원이고 자연주의자 포스도 풍기지만 채식주의자는 절대 될 생각이 없다. 장래 희망은 보전생태학(Conservation Ecology)을 전공하여 생태복원 전문가가 되는 것. 새만금과 4대강을 되살릴 때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되살리지 못하면 평생 실업자로 지낼 수도 있지만 별로 걱정하진 않는다. 왜? 기필코 복원될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 동안 갯벌 위에서 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7년이나 걸었던 익숙한 바닷길이지만 방조제가 막힌 뒤부터는 왠지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아득할 때가 너무나 많았다. 누구든 붙잡고 꼬치꼬치 길을 묻고 싶었다. 씩씩하게 살아남은 농게들은 그런 내게 소중한 이정표였다. 지금까지 제대로 걸어 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알려 주는 선명한 이정표! 녀석들 덕분에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안다. 앞으로도 새만금을 걸으면서 무수한 주검들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다 보면 또 어디선가 살아 있는 생명들을 만날 테고, 녀석들을 통해 다시금 희망을 지피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새만금이 되살아나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리라는 것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걷는 이유를 그해 여름에 만난 농게들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가끔 상상해 본다. 훗날 다시 바닷물이 밀려들어온 새만금을 즐겁게 걷는 순간을! 저 너머 갯벌에서 갑자기 수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날아올라 황홀한 군무를 보여주는 모습을!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아름다울 그 장면을 떠올리며, 녀석들의 군무를 머릿속으로 가만히 안무해 본다.
4월 21일. 마지막 돌덩어리들이 덤프트럭에서 쏟아져 내렸다. 방조제 위에선 때 아닌 태극기가 펄럭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한국의 간척 역사가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셨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말을 잃고 묵묵히 눈앞의 절망을 응시했다. 그토록 비통하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나는 그 전에도 그 뒤에도 결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새만금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만금은 단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맞이했을 뿐이고, 모든 고통엔 반드시 끝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5년이 지났으니 고통이 끝날 시간도 5년만큼 가까워졌을 것이다.
우리는 다 죽어 버린 갯벌 위를 걷는다. 한때 무수한 생명들로 넘쳐나던 갯벌이 어느새 모래바람 날리는 황무지로 변한 걸 보며 우리는 수없이 절망하고 수없이 회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희망 또한 발견한다. 앙상한 갯골에 아직도 살아 있는 농게들과 망둥어들을 보면서, 칠게들이 아직도 물밑에 바글거린다는 어민들의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바다를 막고 난 뒤 방조제 안쪽의 수질오염을 감당할 수 없어서 농림부가 지금까지도 슬쩍슬쩍 수문을 열고 바닷물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린 머지않아 갯벌로 밀어닥칠 짙푸른 바닷물을 예감한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건 바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거야말로 희망의 가장 큰 근거다. 아직 그곳을 잊지 않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한, 새만금의 숨결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계속 이렇게 걸으면 방조제에 금이라도 가겠지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책은 지구나 우주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지역에 대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랑 얘기입니다. 단순히 새만금 바닷길 걷기에 대한 세밀한 기록물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새만금 생태 보고서만도 아니고, 선생님과 아이들의 추억담과 성장기만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보물단지입니다. 문규현 신부((사)생명평화마중물 대표)
이 책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7년간 매년 새만금 바닷길을 걸어 온 현석이의 절절한 새만금 사랑 노래다. 그 많던 즐거움과 슬픔과 감동과 안타까움을 글로 써 내는 작업이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끝내 해낸 현석이가 자랑스럽다.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을 통해서 우리의 지구가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으로 바뀌어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진영(가락고 교사.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 모임' 회장)
그동안 어린 학생들 데리고 새만금을 찾았던 것이 헛된 노력이 아니었음을, 새만금의 아픔은 한 어린이가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현석이의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힘을 줍니다. 고맙다, 현석아! 이용철(중화고 교사. ‘한강 하구를 지키는 교사 모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