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를?"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혀끝까지 와서 맴도는 대답이 있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겁니다." (...중략...) 내가 하는 '노는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독일에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도록 13년간 심리학을 공부한 내가 '노는 이야기나(?)' 하고 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왜곡된 여가 문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pp.14~16
심리학적으로 창의력과 재미는 동의어다. 사는 게 전혀 재미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갑갑한 사람이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물론 21세기에도 근면 성실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번 잘 살펴보라.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모두들 죽지 못해 산다는 표정이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의 사는 표정은 더 심각하다.---p.16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이지만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이 장애물들은 일단 자유, 민주, 평등을 획득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법을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p.21
정리해보자. 잘 노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읽는다. 따라서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그리고 잘 노는 사람은 가상 상황에 익숙하다. 놀이는 항상 가상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는 데도 매우 능숙하다.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능력은 또 하나의 가상 상황에 나를 세워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하고 잘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린 잘 놀아야 한다. 놀이의 본질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pp.153-154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은 하나도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일본인은 욘사마를 쫓아다니는 일본 아줌마들이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아내들이 일본의 한 영화배우에 미쳐 일본으로 날아가 며칠씩 흥분해서 몰려다니면 이를 참고 바라볼 수 있는 한국 남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일본에서는 이 한심한 재미마저 인정된다. 남편들도 인정하고 일본 사회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인정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의 문화 상품이 팔린다고 철없이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솔직히 나는 두렵다. 욘사마에 미쳐 돌아가는 일본의 아줌마들의 한류 열풍이 인정되는 일본의 문화적 잠재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시 점령할지. ---pp.202-203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를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김정운교수는 이 시대의 심층을 읽는 잠수부와도 같고, 미래를 예감하는 지진계와도 같고, 여가문화의 새로운 서부지대를 횡단하는 소몰이꾼과도 같다. 재미있으면서도 짜릿한 지적쾌감을 일으키는 이 글읽기 자체가 신개념의 여가학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려줄 것이다. 이어령(초대문화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