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은 인생에 대해 무지한 나이가 아니다. 설사 무지하다고 해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는 못하는 나이다.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려면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까 덮어놓고 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프롤로그 p.11)
“자라고 있는 기분이야.”
“그 기분, 잊지 마. 어른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근사한 기분이니까.”(첫 번째 이야기/라푼첼 p.32)
“이런저런 것들을 비교하지도 않고?”
“한 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 (두 번째 이야기/빨간 모자와 늑대 p.44)
“그런데 있지, 브레멘 근처에도 안 가본 동물들한테 브레멘 음악대라는 이름을 붙여줘도 되는 거야?”
“뭐 어때. 사랑 아닌 것도 다 사랑이라고 하면서 팔아먹는 세상인데.” (세 번째 이야기/브레멘 음악대 p.56)
온 세상의 모든 생명이 끝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달콤한 것을, 향기로운 것을, 사랑스러운 것을, 그러니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다섯 번째 이야기/꿀벌 여왕 p.82)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세상에는 그런 소유도 있어. 잡을 수 없어도 볼 수 있는 것. 마찬가지로 볼 수 없어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것도 있지. 이를테면 기억 같은 것.” (일곱 번째 이야기/달 p.106)
“너는 항상 질문을 해야 해. 어른이 되어서도 말이야. 질문을 하는 건, 절대로 창피한 게 아니야. 제대로 된 질문은 대답보다 힘이 세니까.”
그나저나 비가 끈질기게도 오시네, 보아뱀은 혼잣말을 하며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라, 보아뱀도 비가 오신다고 표현하는구나. 나는 조금 놀라고 기뻐서 히히, 웃고 백과사전을 펼쳤다. 선생님이 어렵다고 했던 비의 이름들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어째서 밤비란 말은 있고 낮비란 말은 없는 건지, 비는 왜 그렇게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지, 나는 어떻게 자라 누구와 끼리끼리가 되어 어느 마음에 무슨 이름의 비로 내릴 건지, 어린 마음의 질문들이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번째 이야기/장화 신은 고양이 p.136)
“하지만 어른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잖아?”
“키가 아니라 다른 게 자라지. 어딘가를 앓고 나면, 누군가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거나.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열 번째 이야기/난쟁이 요정 p.151)
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수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끝없이 생긴다는 것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일어나는 게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 애쓰지 마. 삶은 절절한 허구야.”
언젠가 잠이 든 내 머리맡에서 보아뱀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는 몰랐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될 때, 심장 깊은 곳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혈관의 구석구석을 통과할 때, 문득 삶은 절절해진다. (열한 번째 이야기/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p.243)
“네 말은 언제나 옳아. 네가 하는 모든 질문이 옳은 것처럼, 네가 찾아낸 모든 대답도 옳은 거야.” (열일곱 번째 이야기/완두콩 공주 p.276)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숨소리를 맞추고, 발걸음의 폭을 맞추고, 생각의 속도를 맞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 (열여덟 번째 이야기/무덤 p.286)
“그런데 너는 누구야?”
그것이 그 꼬마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에필로그 p.306)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