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아래로 서울의 지붕들이 조그맣고 더 조그맣게 보였다. 그 속에서 그렇게도 못 견뎌하고 울분하고 체념하면서 빙빙 맴돌았던 내 나라의 좁은 땅, 내 젊은 날의 우울한 기억들이 여기저기 꿈틀대는 도시, 나를 화나게 했던 착한 사람들의 바보 같은 표정, 사랑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줄로만 알았던 그것들이 갑자기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나는 알지 못했었다. 이별이 때로 값진 것은 새것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헤어지는 헌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이별은 또다른 재회이며, 그래서 이별은 그리움을 키우는 높은 이자의 빚이라는 것.---「4 이별」 중에서
우리는 물론 숱한 역겨움과 울화를 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울화나 역겨움보다 조금은 더 깊은 세상에 대한 애정을 소유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어떤 때의 세상이란 참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개나 고양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던 사르트르.
개들은 신에 대한 토론 따위로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들지 않는다던 휘트먼의 시구.
인간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발자크의 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건 아마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고 긍정적인 체념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소리는 아닐까. 나 이외의 타인을 사랑한다는 일이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퍼뜩 발작을 일으키곤 하지. 저 발자크처럼. 6. 30. 土---「44 위로」 중에서
각오, 새로운 각오라는 말, 지겹게 들어온 말.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무서운 가미카제가 생각난다. 지도자와 교육과 새로운 역사가 어김없이 요구하는 말―새로운 각오.
긴장하지 않고, 나를 다그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도 유보시키지 않고, 어려움이나 불안을 예감하지 않고―아무것도 각오하지 않고 딱 일 년만 살아보고 싶다. 아니면 딱 한 달만이라도.
어머니의 생일에 부쳐드렸던 백 달러가 어머니의 편지와 함께 되돌아왔다.
늙은 엄마―슬픈 단어다. 9. 16. 水---「90 자유」 중에서
내 인생이 나무라면 좋겠다.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맞추면 그 꼴이 드러나는 나무판자라면 좋겠다. 책상이 될지 금고가 될지 아직은 모른다. 어쨌든 나는 거기에 니스나 페인트를 칠하지는 않겠다. 그냥 진흙을 문대어 그 무늬나 선명히 드러나도록 할 테다.
몸이 고되니까 신경질만 솟는다. 나는 건들거리며 헬레레대며 여유작작하게 살고 싶은데 어쩌자고 눈이 자꾸만 충혈돼 버리는지 모르겠다. 가미카제 특공대원처럼.
우리 한길이는 해낼 것이다―라고 어머니는 편지에 썼지만, 아, 나는 졸지 않고, 돈 계산을 착오 내지 않고, 월요일 아침까지 잘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인가. 12. 19. 火---「140 책상」 중에서
부장은 사람들에게 ‘LA에서 새로 온 김한길 기잡니다’ 하고 나를 소개했다. 그러면 나는 ‘잘 부탁합니다’라고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LA의 주유소에서 밤일을 하다가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햄버거 집에서 쿡헬퍼로 있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쿡헬퍼로 일하기 위해서는, 약혼식 때 맞춘 흰 와이셔츠에 기름을 잔뜩 묻혀야 했다는 사실도 물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나 그들이 잘못 알고, 내가 출세한 것으로 생각할까 봐. 3. 16. 火---「178 출세」 중에서
병정들은 나를 반겨주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행정반에서 간단한 전입 수속과 교육을 받고 나오자 그들이 나를 에워쌌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질문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집이 어디야?” “서울입니다.” “서울이 전부 니 집이냐?” “아닙니다. 동작구 흑석동 60의 38홉니다.” “사회에선 무얼 했나?” “학교 다니다 왔습니다.” “어느 학교야, 임마.” “누나 있나?” “애인 있어?” “아버지 직업이 뭐야?” “새끼 꼴 줄 아나?” “술 잘 마셔?” “축구 잘해?” “계집은 몇 개나 따먹고 왔어?” “처녀도 있더냐?”
그중 가장 고참인 듯한 병장 하나가 모두를 조용히 시키고 나를 자기 앞에 불러세우더니 “어디 이놈 얼마나 똑똑한가 보자”라고 했다.---「부록: 병정일기 19」
무엇인가 도둑질을 당했을 적에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당사자와 훔친 자 서로에게 반만큼씩 잘못이 있다는 말이 옳다면, 지난밤 내 지갑 속의 돈을 딱 절반만 훔쳐간 친구는 아무 죄도 없는 놈이다.
자기 죄만큼의 돈인 절반은 훔쳐가지 않았고, 내 잘못만큼의 절반만 가져가 버렸으니…….
돈의 반을 잃고 죄의 전부를 범한 나는─어찌할까.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쉴 사이 없이 떠벌리는 조롱과 비웃음과 농담들 모두가 갑자기 막 허무해져 버렸다.
우리는 사람을 아쉬워하지만 사람을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남모를 사소한 일로 혼자 웃고 울 줄 알지만 우리는 열광할 줄을 모른다. 통곡할 줄을 모른다. 살아 있으면서 무감각한 것처럼 가여운 것이 또 있을까.
---「부록: 병정일기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