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하나만 가지고도 상상력이 넘쳐흘렀다. 그는 카트를 만들면서 실제로 카트를 체험하기 위해 강원도로 갔다. 카트의 속도는 시속 30킬로미터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땅에 붙어서 달리기 때문에 체감 속도는 엄청났다. 이런 체험을 카메라 뷰에 적용해 보았다. 커브를 돌 때 카메라를 줌인 했다가 빠지게 한다든지, 영화 <드리븐>에서 빨리 달릴 때 시야가 좁아지는 장면을 유저가 느낄 수 있게 표현했다. 그는 “잘 만든 게임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 손이 가고 빨려들게 된다. <카트라이더>가 그런 게임이다”라고 말한다. 2006 독일 월드컵 아드보카트 감독의 이름을 패러디한 ‘아드보 카트’, “거북이가 느리다는 편견을 버려”라는 카피로 눈길을 모은 ‘거북이 카트’, 변기이기 때문에 물을 맞으면 되레 한 번 더 물 공격을 할 수 있는 ‘변기 카트’까지 배꼽 빼는 상상의 연속이었다. <카트라이더>는 섬세한 부분에도 개발자의 재미난 상상력을 숨겨놓았다. 유저의 감성을 자극하고 형상화시키는 상상력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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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상력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크게 두 가지 부분이다. 첫째는 상상력에 도움을 주는 것들을 많이 본다. 1순위가 만화, 2순위가 소설, 3순위가 사진이다. 공연이나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특히 공연은 그 자체가 상상력의 결정물이라 상상력을 오히려 방해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공장을 짓기보다는 인프라(기반 시설) 구축에 힘을 쓴다. 장기적으로 공장보다는 인프라에서 독창적인 제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상상력을 저해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유행하는 노래를 외우거나, 유행하는 곳에 가거나,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은 그에게 먼 나라 이야기다. 가치관만 비확정 상태로 두면 된다. 비확정 상태로 있으면 개인은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가 호기심을 갖게 한다.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잃는 순간 상상력은 그 호흡을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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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마술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이은결에겐 상상력을 증폭하는 비결이 있다. 메모와 그림이다. 상상력을 저장하고 발전시키는 매체다. 상상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은결에게는 집요한 노력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보통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단언한다. 메모장에 대한 애착은 고려시대 이곡이 향가 <죽부인전>을 지으며 죽부인(대나무 침구)을 찬양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선 메모를 이야기해 보자. 그에게 메모는 한마디로 저축이다. 큰 것을 건지기 위한 저축이어서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그때 적어둔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손에는 메모장이 꼭 들려 있다. 침대에서도 메모장을 뒤적이다가 잠이 든다. 이러다 보니 그의 메모장은 군데군데 잉크 번진 자국이 많다. 메모장에 쓸 게 없어도 들고 있으면 또 쓸 게 생긴다. 기존에 쓴 걸 보고 있으면 또 다른 연상 작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혼자서 펜을 들고 있을 때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