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먼저 몸으로 하는 거 아냐? 여자고 남자고 백날 감동 줘봐라, 그게 우정이지 사랑이야? 손이 피부에 닿으면서 파르르 떠는 느낌, 그게 사랑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손끝에서 와인처럼 스며드는 따뜻함, 서로 끌어안았을 때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피부가 사라지고 서로의 몸이 하나로 녹아드는 느낌. 이런 느낌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녹는 느낌, 아니면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후 끓는 녹차 향을 맡으며 침대에 누워 있을 때의 느낌같이 그냥 즐거운 감촉일 뿐이니까.
파리 사람들에겐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 감촉을 통해서 사랑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촉 자체가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에 대한 설레는 느낌이 없어지면 거침없이 정리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 처음 만날 때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나눈다.
― <파리… 첫눈에 빠져드는 강렬한 사랑> 중에서
베를린에서 사랑은 강한 트랜스(trance) 음악 같은 것이다. 또한 가슴속에 응어리진 외로움을 잊을 만한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하는 엑스터시나 아씨드 같은 육체적 중독이다.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 하룻밤, 다른 사람 몸으로 자기 몸을 전기고문하듯 짜릿하게 만드는 섹슈얼 에너지를 느끼고, 그 느낌에 중독되는 상태를 말한다. 베를린의 젊은이들은 반려자를 고를 때 우리나라 어른들이 말하는 ‘속궁합’에 가장 충실한 것 같다.
전형적인 베를리너 필립은 ‘연애’를 이렇게 정의한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을 때 서로 상대방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기가 거기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맞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연애야.”
― <베를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발적이고 거친 사랑> 중에서
영국 남자들은 여자의 열정을 자극하기보다 평소 ‘매너’와 ‘배려’로 보호받고 싶어하는 여자의 본능을 사로잡는다. 데이트에 나가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품위 있고 멋진 매너와 와인 잔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슬며시 채워주는 센스, 데이트를 하나의 이벤트처럼 멋지게 준비하는 섬세함 등으로 여자가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한다. 그리고 연애 중에도 여자가 잠자는 시간이나 일하는 시간에는 전화를 삼가 방해를 하지 않는다든지, 여자의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면 절대 가족 얘기는 꺼내지 않는 등의 배려로 여자를 감동시킨다.
영국 남자들의 ‘매너’란 전혀 티내지 않으면서 여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유럽 남자들에 비해 거짓말이나 허풍이 적고, 중요한 시간에 애인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 등이 영국 남자들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영국 남자라고 완벽할 리는 없다. “티격태격해야 고운 정 미운 정도 쌓인다”라는 옛말도 있듯이 그런 것을 몰라 끈끈한 맛 없이 차가운 남자들도 있고, 선의의 거짓말도 할 줄 몰라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매너가 문화의 일부인 만큼 여자도 당연히 같은 수준의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자가 매너를 지키지 못하면 굉장히 상처를 받고 심지어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 <런던… 매너로 이성을 사로잡는 귀족적 사랑> 중에서
스페인 남자들은 여자를 찜하면 처음에는 오직 연락처를 받아내는 일에 목숨을 건다. 그리고 성공하면 다시 만나는 것에만 매달린다. 그것도 성공하면 호텔이나 모텔로 끌고 가는 데만 신경 쓴다. 여자들도 남자들의 그런 속셈을 빤히 알지만 적당히 튕기다가 지는 척, 끌려가는 척하며 남자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 자체를 즐긴다.
걸핏하면 이번에 또 매력적인 여자를 만났다고 호들갑을 떠는 마뉴엘은 ‘정식으로 사귀는’ 여자만도 세 명이나 된다. 그런데도 그는 바나 레스토랑에서 예쁜 여자를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전화번호를 얻어내 유혹한다.
스페인 여자들은 ‘일단은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 안 잡는다’라는 식으로 연애를 하기 때문에 그런 남자를 꼭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스페인 여자들은 데이트 중에도 다른 남자가 대시해 오면 튕기는 척하면서 야한 농담을 다 받아주고 같이 춤을 추면서 동반한 파트너 남자를 자극한다. 그리고 새로 만난 남자가 더 마음에 들면 획 돌아서서 그 남자하고만 어울린다. 당장 재미있으면 사귀고, 재미없어지면 차버리고, 동시에 여러 명의 남자를 사귀기도 한다. 상대 남자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에 문제 삼지도 않는다.
― <마드리드… 춤과 유혹이 어우러진 열정의 사랑> 중에서
“연애하면서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신경을 쓰고 그러다가 싸우는 것처럼 심한 낭비가 없어. ‘낭만’을 핑계로 시간 쓰고 돈 쓰고…. 그런 낭비를 할 필요가 있을까?”
스웨덴 커플들이 연애 중에도 거의 싸우지 않고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낭비를 싫어하는 그들 문화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마 심각하게 연애해 본 사람은 싸우고, 달래고, 화해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연애 중에 그런 일만 줄여도 싸우고 헤어질 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낭비를 싫어하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연애’도 자기발전의 기회로 활용한다. 둘이서 돛단배로 여행을 하거나 등산을 하며 몸과 마음을 맑게 하거나, 건강과 몸매 관리에 필요한 운동을 함께 하거나, 달리기나 스쿼시 등 열량 소모량이 많은 운동으로 근력을 키운다거나,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독서로 마음을 살찌우거나, 당번을 정해 가장 건강에 좋은 요리를 정성 들여 만들어 함께 먹는다든가 등등. ‘연애’하는 동안 혼자서는 하기 어려웠지만 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함으로써 자기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 <스톡홀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랑> 중에서
휴그는 파리에서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이 동거를 하거나 결혼하면 커플 간 더치페이의 진수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남녀가 집세를 정확하게 반씩 내고, 집에 사 가지고 오는 식료품도 남녀가 정확하게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자기 돈 내고 사온다. 결혼을 하면 집이나 가구, 가전제품도 자기가 낸 액수만큼 자기 명의로 해놓고, 남편이 번 돈을 부인 통장에 예금한다거나 남편이 부인 돈으로 산 집을 자기 명의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처럼 결혼을 해도 돈으로 인한 분쟁을 피하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 세계 최초로 증권시장, 경매, 공산품 선물거래 방식 등을 발명한 사람들답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이 결혼할 때 쓰는 ‘혼전 계약서’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뉴욕으로 건너가 지금은 뉴욕 내에서도 보편화되었다. 혼전 계약서란, 말 그대로 결혼하기 전에 결혼하면 누가 돈을 내고 이익금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해 기록한 계약서를 뜻한다.
― <암스테르담… 자유롭지만 철학이 있는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