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공산당 일당에 의해 통치되고 있고, 국가 통치형태도 공산주의 체제를 띠고 있으므로 당연히 공산주의 사회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결코 공산주의 사회체제가 아니라고 필자는 감히 단정한다. 내가 외형적인 통치체제나 정치 이데올로기를 도외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택동이 만들어 낸 중국식 공산주의라는 것이 마르크스와 레닌이 추구했던 사회가 아니라, 전통적인 중국의 전제 정치적 요소가 가미된 지배체제이기 때문이다. --- p.4
장정은 꼭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장정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에서 모택동의 지도가 확립됐다. 소비에트 유학파는 급속히 해체되어 어떤 자는 모스크바로 떠나고, 어떤 자는 당내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문이었던 이덕에게 말을 거는 홍군 병사가 한 사람도 없게 되자, 이덕 일행은 도망치듯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둘째, 대일 항전의 구체적 행동이 선언됐다. 셋째, 장국도의 음모로 인해 연안을 향한 장정이 1년이나 늦춰졌다. 장국도 일파가 자신들의 세력을 당 내에서 부각시키고자 분파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넷째, 장정은 홍군의 영웅적인 전투였다. 매일 계속된 전투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24시간 동안 꼬박 전투를 한 경우도 15회나 됐지만 홍군은 끝까지 장정을 수행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영웅이 됐다. --- p.35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실천론」이 중국 공산당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사상 노선에 인식론을 부합시키는 기술적 측면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즉 「실천론」은 중국 혁명 경험의 교훈을 종합하여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필수적임을 천명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분열만을 일으키는 교조주의와 경험주의의 착오를 반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실사구시를 실현하려면 신속히 「실천론」을 시행하고, 이를 시행해 가는 가운데 겪게 되는 많은 변화를 통해 인식도 계속 심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다시 말해서 「실천론」은 당의 실사구시 사상 노선의 이론적 기초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