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이 본 안철수와 대선
_성한용 [한겨레] 정치부 선임기자
1982년 본격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가 30년 만에 가장 인기 있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기까지는 유명 선수들과 감독들의 공이 컸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허구연?하일성처럼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야구 경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해준 해설가들이 없었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부 기자는 일종의 정치 해설가다. 야구 해설가들이 한국 시리즈를 앞두고 제 나름대로 우승팀 전망을 내놓듯이, 정치부 기자들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제 나름대로 승패를 예측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정치부 기자들의 예측이 틀리는 경우가 많다. 전국 각 선거구별로 매우 적은 표차로 승패가 엇갈리며 전체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정치부 기자들의 예측이 대체로 정확하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겨룬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부 기자들은 투표일 한참 전부터 노태우의 당선을 예측했다. 1992년에는 김영삼, 1997년에는 김대중의 당선을 예상했다. 2002년 선거는 투표일 하루 전에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사태가 벌어지는 등 마지막까지 이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오래전부터 정치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1등을 차지했다. 2007년 대선에서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은 일찌감치 이명박의 당선을 예상했다.
정치부 기자들이 대통령 선거 당선자를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촉’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들은 후보 당사자는 물론이고 후보를 돕는 참모들, 후보가 소속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서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부 기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안철수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대상이 아니었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전에는 아예 정치부 기자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뒤, 그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치솟았다. ‘1차 안철수 현상’이었다.
하지만 안철수는 정치부 기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피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청춘콘서트’ 행사장, 서울대, 안철수 집을 찾아다니며 그를 취재해야 했다. 사회부 기자 취재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장에 가지 못한 정치부 기자들은 동영상을 통해 안철수를 접했다. 지금까지도 정치부 기자들 중에 그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안철수가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으니, 정치부 기자들로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후보로 높은 지지를 이어온 안철수는 최근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펴내며 “앞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계속하든, 이 책에 담긴 생각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대선 출마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곧이어 [힐링캠프] 출연이 이어졌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2차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다.
임석규 정치부장과 김보협, 송채경화 기자 세 사람이 안철수에 관한 책을 쓸 필요가 있겠다고 뜻을 모은 것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직후 [힐링캠프] 방송 직전인 7월 20일이었다. 안철수는 과연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인가, 출마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당선은 될 것인가, 당선된다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끊임없는 의문이 이어졌다. 2011년 9월 이후 축적된 취재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부 데스크와 현장 기자들의 ‘촉’을 모아보기로 했다. 안철수의 행사장과 서울대, 집, 안철수연구소를 쫓아다니며 취재했던 김외현 기자, 그리고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가 작업에 합류했다.
사전 준비를 마친 다섯 사람은 7월 27일 저녁 홍익대 인근 카페에 모여 새벽 3시가 넘도록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진행은 고참인 성한용 선임기자가 맡았다. [한겨레] 정치부에서 함께 일하는 기자들이었지만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의견은 무척 달랐다. 하룻밤의 집중 토론과 몇 차례의 보충 작업을 거쳐 원고가 마무리됐다. 다섯 사람은 ‘2차 안철수 현상’의 여진이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안철수에 대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시간과의 싸움이 책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결정짓는 변수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책은 안철수가 2011년 9월 이후 지금까지 쏟아낸 발언과 행보에 어떤 ‘의도’와 ‘배경’이 있는지, 기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모아서 펴낸 최초의 자료일 것이다. 그를 ‘예비 정치인’으로 간주하고 정치적인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안철수가 어떻게 정치 영역에 진출하게 됐는지, 대선주자로 나선다면 어떤 경로를 거칠지, 박근혜와 겨룰 만한 경쟁력은 있는지 등 세밀한 정보와 분석을 주로 담았다. 따라서 안철수가 실제로 대선후보로 나서게 된다면 의미 있는 ‘안철수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평소 객관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한겨레] 기자들이지만, 대한민국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과감하게 자기 의견을 드러낸 대목도 많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