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얌전히 있던 병코가 갑자기 사납게 짖어댔다. “왜 그래, 병코야?” 남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도 녀석은 어딘가를 보고 막 짖어대면서 제자리를 오락가락하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병코는 진돗개 혈통이 섞였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헛짖음도 적고 게으른 데다 아무 사람이나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구는 것은 남일도 동환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다시 비명과 “사람 살려!”라는 외침도 들려왔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시선을 교환한 남일과 동환은 각자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잡았다. 남일은 엽총을 다리 옆에 끌어다 놓고, 동환은 정글도를 칼집째로 옆구리에 찼다. 계속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일이 모닥불에서 타고 있는 장작 하나를 들고 일어섰다. “농가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 “제가 가보죠.” “아니다, 같이 가자. 병코야! 찾아!” 남일의 말이 떨어지자 병코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동환은 정글도 손잡이에 오른손을 얹은 채로 조심스럽게 병코의 뒤를 따랐다. 어딜 가든 가로등이 있어 빛이 사라지지 않는 도심지와는 달리, 강원도 산골의 밤은 먹먹한 어둠이 사위를 짓눌러 폐소공포를 자극할 정도로 깊고도 어둡다. 날이 맑으면 별이나 달빛으로 시야가 트이지만, 구름이 낀 듯 캄캄한 지금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손전등 하나와 못 미더운 횃불뿐이었다. 병코가 짖으면서 달려간 곳은 아래쪽 농가였다. 앞서서 달려가던 동환은 길 가운데에 사람이 웅크려 있는 것을 보고 손전등을 비췄고, 다음 순간 둘은 믿기지 않는 풍경에 신음했다. “뭐야?” “이럴 수가…….” 바닥에 쓰러진 것은 동환에게 리어카를 빌려준 아저씨였다. 그 위에 걸터앉아 있던 노인이 손전등 빛을 보고 일어섰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입에서 피와 살점이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동환이 발견했던 그 실종 노인이었다.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하지 않았나?! 실제로 노인의 상태는 시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노인이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동환들을 향해 다가올 때마다 복부에서 흘러내린 내장이 밟혔다. 다가오는 그의 뒤에서 방금까지 물어 뜯기던 아저씨가 꿈틀거리다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