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송령(蒲松齡)은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 치천현(淄川縣) 사람으로 명나라 숭정(崇禎) 13년(1640)에 포가장(蒲家莊)에서 태어났다. 포송령의 조상은 원대(元代)에 몽고인을 따라 중국에 들어온 아랍인이며, 산동 일대는 별다른 특산물은 없지만 사방으로 뻗어 나간 도로망으로 인해 사방과 교역이 가능해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포송령의 조상은 대대로 그 지방의 명문거족이었지만 윗대에 이르러 가세가 기울어지자 부친 포반(蒲槃)도 유학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하였다. 포송령은 그의 네 아들 중 정실 소생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 경사(經史)를 막론해 한번만 가르치면 전혀 막힘이 없는 수재였다. 19세 때인 1658년 현시(縣試)ㆍ부시(府試)ㆍ원시(院試)에 연속하여 수석으로 급제하였지만, 명나라와 청나라가 바뀌는 때의 혼란 속에서 향시(鄕試)에 거듭 실패하며 재주를 펴지 못하였다. 서른세 살부터는 같은 현의 권세가 밑에서 막료와 훈장 노릇으로 생계를 꾸리며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계속되는 꿈의 좌절로 관리로서 출세할 기회가 막히고, 형제간의 반목으로 가난하고 적막한 일생을 보냈다. 일흔의 고령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72세 때 간신히 공생(貢生)이 되었다가 1715년 향년 일흔다섯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포송령의 저작으로는 『요재지이』와 이곡(俚曲) 14종, 『요재문집』, 『요재시집』 외에도 농업과 의약에 관한 『농상경(農桑經)』, 『약수서(藥祟書)』 등이 전한다.
번역자 : 장윤철
장윤철은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문학을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그의 꿈이며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며 객관적으로 서술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데 있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장윤철의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역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메뉴얼』이 있으며 편저 『조조의 진면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