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유토피아나, 위대한 사회를 살기에 걸맞도록 사람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도록 지은 것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사람을 그렇게 설계하기 위해, 신은 뭘 끙끙대고 고심했어야 할 필요도 없었음이 분명한게, 그가 사람의 코에다 '숨'을, 또는 그의 '뜻'을 불어넣고 있었을 때, 그 '뜻'을 '욕망'의 모양으로 슬쩍 바꿔놓기만 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밑에 구멍 뚫린, 저 '욕망'의 주머니를 뽑아내보라, 그러면 유토피아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알게 될 것을,....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인세의 종말이기도 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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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속에 뿌리내린 나무란 죽은 속에서의 생을 표상하는 비유이며, 불멸성이란 그래서 자기 자신이 죽음이면서 삶이 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자기의 불멸성은 인신의 상태에 이른 인간을 지칭함에 다름아니다...그 자기의 불멸성이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가능케하는 자리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에 의해 전율로서 설파되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신앙되었던 그 죽음의 제단 위에 선 인신을 죽음의 한 연구는 실재하는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주인공이 자신의 각본에 의해 냉정하게 자기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인신임을 입증한다. 그 완성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 김현씨의 평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