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삼인(천인, 비인, 상인)으로 나뉜 채 살아가는 지상의 세계, 그중 한골이라는 작은 마을의 높은 어르신 류원은 17년 전에 맞아들여 키운 ‘갈’이라는 아이에게 아홉 감과 아홉 붓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중간 계층)과 비인(하급 인류) 사이에서 태어난 갈은 상인들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겪었는데, 류원은 그녀를 거둬들여 오랫동안 키워 온 것이었다. 갈이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류원은 아홉 붓과 아홉 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를 창조한 감(신)들은 자신의 힘을 아홉 붓에 나눠 두었고, 그것을 모두 모으게 되면 세상은 삼인이 모두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갈 또한 그 아홉 붓 중 하나의 주인임을 알려 준다. ‘붓’은 여러 가지 형태일 수 있는데, 갈의 붓은 그림 그리는 붓이었다. 갈은 아홉 붓을 찾아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듣게 된 뒤, 다른 붓과 그 주인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갈은 여행 중 숙소에서 약초를 다루는 ‘재찬’이라는 사내를 만나고, 한 마을에서는 피리 부는 소녀 ‘아리’를 만난다. 아리는 피리를 통해 물을 부르는 능력이 있으며, 아리의 피리는 ’붓‘의 하나였다. 갈과 재찬은 아리를 데리고 여행을 계속한다.
넋앓이(‘넋없사니’ 즉 무당이 신을 모시기 전 일어나는 현상)를 겪는 아리를 이름난 넋업사니에게 보이기 위해 일행은 당촌으로 향한다. 유명한 넋없사니, 그리고 그녀의 딸들인 미진과 미연을 만나고, 미연에게서 새로운 붓인 ‘방울’을 얻게 된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나무 깎는 청년인 시겸을 만나는데, 그는 비인의 소생이었으나 마을의 큰 어르신이 거둬들여 그의 아들로 자란 청년이었다. 비인이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아야 했는데, 갈 일행을 만난 시겸은 큰 어르신에게 갈 일행과 동행해 여행을 떠날 것이라 얘기한다. 그가 나무를 깎을 때 쓰는 칼 역시 ‘붓’이었다. 괴질이 창궐한 고장에서는 천인인 ‘은라’라는 소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며, 그의 원혼을 달래고 그로부터 또 하나의 붓인 ‘종’을 얻게 된다. 일행은 은라의 붓인 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한다. 무지갯골과 잎메 등에서 새로운 붓(도기)을 찾고, 여러 마을의 재앙과 관계되어 언급되는 인물인 ‘나그네’의 악행에 대해서도 알아 가던 일행은 새로 도착한 마을인 얼음골에서 기구하게 죽게 된 비인 출신의 ‘시희’라는 이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녀의 한을 풀어 주며 또다시 새로운 붓(뜨개바늘)을 얻게 된다.
서쪽의 다른 마을로 가던 일행은 또다시 ‘나그네’, 영암을 만나게 된다. 갈의 아버지였던 그는, 자신의 부인을 죽인 상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가 여러 마을을 돌며 비파를 통해 재앙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갈은 깨닫게 된다. 재찬은 누이인 이린에게서 또다른 붓인 ‘옥돌’까지 얻게 되고, 갈 일행은 영암과 숙명의 일전을 벌여 그에게서 비파를 빼앗는다. 아홉 개의 붓을 다 모았지만 일행이 기대했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류원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갈 일행에게서 아홉 붓을 빼앗으려 한다. 갈 일행은 류원의 저택에서 탈출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