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봉사가 부담스럽고 짜증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나 시선과 평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교회의 일이 무보수 희생을 강요받는 노동으로 변질되어 속으로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겉으로는 표현도 하지 못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잠입니다. ---「1장 잠자는 자」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감추어진 것이 하나님 앞에서 들춰지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 나의 나됨을 아는 것, 곧 영적인 자기주제파악입니다. ---「1장 잠자는 자」중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의 것을 들춰내실 때 우리가 보여줄 합당한 반응은 시인입니다. 숨기고 싶은 것이 드러났으니 물론 창피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앞으로 담대히 나와서 시인하며 자복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면 됩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해지는 방법입니다. ---「2장 성령 충만」중에서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의 죄악성과 부패성으로 상징되는 육신의 생각은 겉으로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죄악 된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둑질과 살인과 같은 것만은 아닙니다. 인본주의적 사고, 자기 의지로 하려 하는 것, 하나님 말씀에 지배받지 않고 내게 익숙한 생각과 삶의 방법대로 하겠다는 잘못된 의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육체의 생각과 일입니다. 아주 오래된 죄악의 뿌리입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보다 얼마나 더 “사랑”을 나누고, 더 “자비”를 베풀고, 더 “양선”을 실천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본적인 박애주의에서 나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자선을 하고 싶다”라는 인간중심의 자아성취와 만족, 곧 육체의 생각과 일을 이루기 위해서 끝없이 열심으로 친절과 봉사와 선행을 합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화평을 누리게 되면 이웃과의 화평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웃과 다툼 없이 평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나에게 여러 가지 유익이 옵니다. 그러나 화평의 목적은 내가 계산한 유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강과 희락이 우리를 주관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자각하고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
자비는 친절과 연관됩니다.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좋은 내용으로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친절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도와줬다고 해서 무조건 자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도덕적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베풂과 행함의 목적과 방법이 도덕적으로 선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신앙의 선이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
오래 참음, 자비, 온유는 모르는 척하며 덮어두고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 허물이 있는 자, 게으른 자, 영적인 잠을 자는 자에게 그들의 문제를 알도록 깨우쳐줍니다. 격려하고 충고합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잠을 자는 자에게 일어나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그 근거는 자비이고, 그 방법은 온유입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
온유는 먼저 내가 나를 돌아보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나의 연약과 미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관용을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지게 하십니다. 그로 인해 오늘보다 내일 더 거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소망할 때, 나는 허물이 있는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며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며 온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3장 성령의 열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