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예술가이자 미학자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아파트에서 살았다. 작가로서 활동영역을 서울로 옮기면서 난생 처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 그대로 혹독한 생활을 하였다. 지난 10년간은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목동과 강남 지역의 고층 아파트촌 옆 동네에 있는 다세대 빌라 세입자로 2년마다 이사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3년전 고층 아파트는 없지만 값비싼 한옥이 많은 서촌의 다세대 빌라로 이사를 왔고 2년전 서촌에 빌라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빌라촌의 반지하 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서촌은 역사적으로 문인과 예술가들이 거쳐 간 곳이다. 경복궁과 인왕산, 청와대와 북악산, 통인시장과 세종마을이 있는 서촌은 동네 곳곳에서 그들의 예술적 발자취를 소소하게 만날 수 있다. 예술가들이 머물고 간 집들은 낮고 작거나 오래 되어 상대적으로 안온한 느낌을 준다.
예술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쉼터이자 일터이고 삶터이다. 저자에게 서촌의 반지하 집은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자유롭고 미학적인 공간이다.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철학을 쌓을 수 있다. 한국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아파트촌과 경쟁조차 되지 않은 낮은 세상이라 자유롭기 그지 없는 천상의 내 맘대로 공간인 셈이다.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저자가 떠올린 말은 "반지하 미학, Banjiha Asthethics"이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결합이었다. 저자가 처음 이 말을 건넸을 때 그 말이 가진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통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반지하'라는 세상을 하층 계급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을 때, 저자의 '반지하 에스테틱스'가 갖는 의미는 훨씬 뚜렷하게 다가왔다. 과연 우리에게 '집'은 무엇을 의미하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곳인가? 사람이 안온하게 꿈꾸고 사는 곳인가?
저자는 오랜 빌라 생활 끝에 반지하를 살아 숨쉬는, 생태적 공간으로 만드는 비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득했다. 저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서촌의 반지하 집은 '살아 있는 집'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반지하 미학적 삶'을 읽고 나면 살아 있는 집이라면 모두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공통된 비법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