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기로 마음먹은 건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 마주한 법조사회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되었다.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합격자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던 그는 서울대 법대 등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사법연수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더구나 사법연수원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던져 놓고 “어이! 고졸 출신 노무현이 한번 대답해보지!”, “나이 많은 노무현이 말해봐!”라며 노골적인 차별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큰 상처를 받았다.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법조계의 학벌주의, 순혈주의의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정치인이 되었고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평소 서민적이고 소탈한 언행으로 대중적 지지를 얻은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법조계 역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들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서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른바 ‘평검사와의 대화’를 비롯한 파격적인 행보로 고위급 검사들의 용퇴를 이끌어내며 연수원의 기수문화 파괴를 주도한 것이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그 동안 마음 속 응어리졌던 숙원사업인 사법개혁의 칼을 꺼내들었다. 그 정점에 바로 ‘로스쿨법’이 있었다.
---「로스쿨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중에서
천신만고 끝에 로스쿨 최종합격 통지를 받은 김 군. 나이도 많고, 스펙과 학벌이 부족해 서울의 명문 로스쿨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방 사립대 로스쿨은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비법조인의 첫 발을 내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럽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김 군의 머릿속은 온통 다시 고민으로 가득했다.
“가족들에게 그 어마어마한 로스쿨 학비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지?”
아닌 게 아니라 로스쿨 학비는 김 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민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액이다.
2014년 기준 사립대 로스쿨 연평균 등록금은 약 2,000만 원. 특히 로스쿨 첫 해 첫 학기에 지불해야 할 돈은 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만약 김 군이 사법시험을 봤다면 이 같은 비용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법시험은 로스쿨에 입학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응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다리 걷어차기」중에서
로스쿨은 정량적 평가요소인 학부 성적, 외국어 성적, 리트 성적과 정성적 평가요소인 논술, 자기소개서, 면접에 의해 당락이 좌우된다. 문제는 같은 로스쿨에 지원하는 지원자들은 대개 학부성적, 외국어성적, 리트성적 등 정량적 평가요소 면에서 점수가 비슷하여 변별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합격 여부는 면접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받느냐에 의해 결정된다.4 각 로스쿨마다 반영비율이 다르기는 하나, 모든 로스쿨은 면접을 필수적인 평가요소로 삼고 있고, 대부분의 로스쿨 입학전형에서 면접점수 반영비율은 30~40%에 달해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응시자는 다른 평가요소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합격의 영예를 안을 수 있다.
로스쿨 입학전형에서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토록 높은 상황이니 각 로스쿨은 각 응시자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을 마련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로스쿨이 면접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현대판 음서제」중에서
그 동안 법원, 검찰, 대형 로펌 등은 사법연수원 성적이라는 객관적 잣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인재를 임용하고 채용해 왔다. 사법연수원 2년 동안의 성적이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성적지상주의’ 아니냐는 연수원 출신 법조인들의 불만은 있었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임용, 채용절차 상의 불투명함이나 불공정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납득할만한 객관적 기준이 있기에 승자도 패자도 모두 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 도입과 함께 인재의 임용과 채용 절차에 일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법연수원 내에서도 수석 수료에 준하는 최상위권 성적을 받아야만 갈 수 있었던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전 경찰청장의 딸, 명문대 현직 총장이자 유명 법학자의 자제가 입사하고, 국내 최대 매출 기업인 삼성전자에 야당 거물 정치인의 자제가 로스쿨 졸업을 하기도 전에 입사결정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야 유명환 장관 사태 때 그들이 보인 화법처럼 “정말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인재를 선발했는데, 선발하고 보니 우연찮게도 누구누구의 자제더라.”는 변명이 일면 통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합격률 75%(특히 변호사시험 1회의 합격률은 실질적인 합격률이 87.15%에 이르렀음에도)의 변호사시험에도 불합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실력이 형편없는 이들을 뽑은 기준이 무엇인지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현대판 음서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