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사각지대, 사람들에게 잊힌 초단시간 노동자
“1명의 죽음은 비극,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치.” 수백 만 명을 학살한 스탈린이 남긴 말이다. 숫자가 너무 커져 버리면 감정은 탈각되고,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의 존재도 잊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정부 통계치는 644만 명으로 32.8%에 멈춰 있지 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 1,200만 명 규모로 추정되고 있고, 그 규모는 증가 추세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가운데 가장 급격하게 증가하는 유형이 단시간 근로이고, 단시간 비정규직 내에서도 주당 소정근로시간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이다.
초단시간 노동의 급증 뒤에는 정부 정책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반듯한 시간제 근로’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등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정책 들을 펼치면서 단시간 노동, 특히 초단시간 노동이 급격하게 확대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초단시간 노동을 양산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을 고용해야 할 상시적 일자리들이 초단시간 일자리들로 쪼개지며 고용률을 높인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쪼개기와 초단시간 노동 급팽창은 정부 정책에 더해 합법적 차별 처우라는 사용자들의 초단시간 노동자 고용 인센티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근로 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초단시간 노동자들을 유급 주휴일?연차유급휴가?퇴직급여제도?기간제 기간제한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한편 4대 사회보험 가운데 산재보험을 제외한 고용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 의무가입 대상에서도 제외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처우 합법화’ 법?제도는 사용자들에게 정규직 일자리 쪼개기와 초단시간 노동 오?남용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위반과 산업재해 처리 기피, 근로계약서 작성?교부 거부 등 사용자 측의 만 연한 노동법 위반 행위로 인해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열악한 노동조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단시간 일자리들은 대부분 노인일자리, 여성 돌봄노동, 대학생?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초단시간 일자리에 노동시장 취약집단이 밀집해 있어 노동자들의 불만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조직화해 노동권을 쟁취하기 어렵다. 그 결과 초단시간 노동은 노동시장 취약집단과 저임금 일자리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퇴행은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켰고, 그 가운데서도 초단시간 비정규직이 정부 정책으로부터 직접적 타격을 받았다.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의 성과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일자리 쪼개기 실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대선공약에서 천명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거듭 다짐하며 노동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초단시간 노동을 포함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고 있다.
이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해 추진한 초단시간 비정규직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동 연구를 재정지원하고 연구 성과물의 출판을 허락해 준 국가인권위원회와 관계자들, 전국에 산재한 초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진과 함께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진행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단체네트워크 구성원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열정으로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 (2012), 『사라져 버린 사용자 책임 :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대안』 (2013),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 : 특수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정책대안』 (2016)에 이어 초단시간 비정규직 연구결과물까지 책으로 만들어 주신 매일노동뉴스 관계자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필자들을 대표하여
조돈문 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