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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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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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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46g | 128*188*10mm
ISBN13 9788960212596
ISBN10 8960212598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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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위드북   평점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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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중독

손에서 나비가 날아간다

허공은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두통을 앓았을 것
여기가 아닌 곳을 찾아
다른 곳을 찾아

두통의 오른 쪽으로 노을을 찢으면 한 주먹의 아스피린이 쏟아진다

늘 뜨거운 물그릇처럼 깨지는 서쪽 하늘
노을이 노을을 반복하듯 아스피린을 먹는다

할머니는 물그릇이 놓이는 곳마다 신이 있다고 믿었지
별을 뒤적이다가 유리는 깨졌고
눈에서 유리 조각을 빼낸다

지금 여기를 참을 수 없을 때
밤을 가위로 자를 때

할머니의 허공이 생긴다 바람이 생긴다

밤은 무엇으로 어둠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일까
불꽃처럼 눈으로 나비가 쏟아진다

지금보다 오래 전의 시간이 머물러 있는 강물 속으로

나비의 다음 나비 속으로

제로의 슬픔

내 안은 서른아홉 가지 감정들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듯 달콤해질 때 여러 가지 비밀들로
뒤 섞이는 기분

부드러운 목소리를 나누는 일은 예의바른 일이지

우리는 하나가 되어 화폭을 채운다 다시 태어나는 꽃과 날개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그림처럼 이미 충분하다

한 꽃술 아래 오래 앉아 악수를 청하면 금세 지루해하며 색이 다른
꽃으로 날아가는 나비들

팔레트와 12월을 펼치자 지금 막 버리고 온 신발이 불순물처럼 녹아 있다
순서를 잃고 배회하는 표정으로

원색들은 보이지도 않게 된 한밤중
얼굴을 씻어도 자주 다른 색으로 호명되었다

엄마가 불러왔던 색깔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내부
그곳에 처음 보는 내가 들어 있다

당신들의 아침과 서른아홉 가지 감정과 저녁 불빛과 나와
무지개를 더하면 제로가 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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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진의 시가 품고 있는 서른아홉 가지 감정들은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들은 독특하다. 깊은 땅속이나 물속에 가라앉은 감정의 실뿌리들을 봄볕처럼 하늘에 펼쳐놓는다. 그 순간 그것은 아주 투명하고 섬세한 결을 가진 나비의 날개처럼,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슴을 열고 날아오른다. 땅속과 물속 체제의 공간을 벗어난 그녀의 감정은 수천수백만 번의 떨림으로 하늘을 유영한다. 그녀의 감정은 수천수백만 번의 날갯짓과 같다. 떨림, 감정들, 하지만 그중 하나의 떨림만을 크게 잘라낼 수는 없다. 그녀의 나비는 어디로, 얼마만큼 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멈추어야 한다. 이 모든 거리의 목마름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하자는 것이 그녀의 전략이다. 그녀의 감정, 서른아홉 가지 떨림이 빚어내는 미묘한 빛깔들을 볼 수 있다면 날갯짓은 이미 충분하다. 그녀의 감정들은 밤새도록 줄넘기를 한다. 단면이나 평면의 선택적 설명이 아닌 유동적이며 다면적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처럼 그녀의 시는 떨림으로 빛난다.
- 박상순 (시인)

하늘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묻는 아이에게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땅의 표면이라고 답한다. 하늘은 대지와 만나는 곳마다 자리해 있고, 그 둘은 지평선을 축 삼아 접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체로, 멀리 맞은편에 있는 줄만 알았던 전혀 다른 존재들이 서로 만나고 열리고 연결되면서 움직인다.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내내 ‘여기’에 머물고 있는 몸과 엮이거나, 정해진 결론이 있는 오늘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새침한 표정을 짓는 내일을 향해 말을 거는 방식으로. 또는, 불완전한 단수의 존재가 또 다른 단수와 함께 서로 간섭하면서 기어코 단수들의 다성多聲을 이루는 형식으로. 이때 생겨나는 지평선과 같은 지대가, 최서진의 시에는 있다. 시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서로 다른 세계가 접촉과 동시에 열리느라 소란해진 “허공”이 있다. 최서진이 만든 교집합의 세계에선 우리가 “지상의 노래를 믿지” 못하고(「음악 시간」), “어디에도 닿지 않을” 듯싶어 절망하는 순간에도(「목련과 신발과 바다」) 부단히 말이 지어진다. 무의미해 보이는 허공에서 살아 있는 단수들의 소식이 전해질 때, 지금의 삶이 안기는 공허도 얼마쯤은 두렵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양경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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