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특별히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쓴 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동시'를 써 달라는 자리에 내어 놓게 된 것은, 김치나 된장을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나와 같이 살아온 '할아버지들의 세계'를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런 '할아버지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어받지 못하고 그것을 죄다 잃었을 때, 그 때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추억에서 꺼낸 감자 후우후우~불어 ''냐음 냠''
내가 믿는 하느님도 그렇다,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난 이오덕 선생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맛있게 감자를 먹고 있을 것이다. 생전에 “자연 속에서 하는 일이 가장 높은 삶”이라고 강조했던 이오덕 선생은 분명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를 “후우 후우” 불다가 한입 가득 넣고는 “하아 허어” 김을 토한 뒤 “냐음 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고 있을 것이다.
‘감자를 먹으며’는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문학’에 발표했던 동시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그에게 감자는 감자 그 이상의 의미였다. 어머니가 주던 감자를 받아먹고 자라나, 교사가 되어서는 사십 년 넘게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산골 아이들을 가르치고,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가서 오두막집 짓고 살고 싶었던 이오덕의 소박한 삶과 바람이담겨 있다. 오랫동안 이오덕 선생과 편지로 교유한 권정생은 “안방과 정지(부엌) 샛문으로 어머니가 젓가락에 찍어 주던 감자가 아마도 이오덕 선생의 삶을 지켜 준 텃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자를 말하고 느끼고 추억하는 그림책이다. 솥뚜껑을 열고 꺼낸 감자의 뜨거운 김처럼, 해묵은 추억첩을 들춰 꺼내는 이오덕의 감자 이야기는 구수하고 담백하다. 논 매는 아버지의 새참으로 내어 간 감자를 아버지와 나눠 먹고, 꼴(소 먹이는 풀) 베러 간 냇가에서 동무들과 벌겋게 달궈진 자갈돌 위에 모래쑥을 얹고 그 위에 감자를 구워 먹었다.
이오덕은 “사시사철 감자로 살아 내 몸도 마음도 이런 감자빛이 되고 흙빛이 되었다”고 말한다. 감자처럼, 땅과 물과 햇빛과 바람을 받아 은근하고 순하고 부드럽게 자라고 살아왔다는 고백이다. 가르치기보다는 깨우치고, 꾸짖기보다는 타이르며,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게 살다 간 그의 삶은 과연 감자를 닮았다.
리듬을 타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읊조리게 되는 그의 글도맛깔난다. “껍질을 훌훌 벗기면서 아이 뜨거!/ 야무진 자주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아이 뜨거!/ 뜨거워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공 받듯이 받다가/ 한입 가득 넣으면 입 안에 녹아드는 그 향기 그 맛/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 맛/ 아른아른 여울물에 헤엄치는 피라미들의 이야기까지 들어 있는/ 그 모래쑥 향기 듬뿍 밴 감자 맛/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향토빛 종이에 펼쳐진 신가영씨의 목탄 그림은 책 전체에서 풍기는 감자 냄새, 흙 냄새, 아이들 냄새, 사람 냄새와 잘 어우러져 있다.
'후우~' 불면서 먹던 감자 맛 어린시절 아련히 추억 반추 목탄 그림
감자는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이 아니다. 은근하고 순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리고 땅과 물,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맛이다. 감자는 또 요즘 우리가 먹는 음식처럼 사람을 요란스럽게 이끌지도 현혹하지도 거짓말하지도 않는다.
감자를 먹으며(이오덕 글·신가영 그림·낮은산·6800원)는 이오덕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감자 먹고 살아온 소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는 교사로 살아온 이오덕이나 우리 말 바로 쓰기로 후학들을 호되게 꾸짖는 학자나 평론가 이오덕이 아닌, 그저 감자를 먹으며 소박하게 살아온 '할아버지' 이오덕이다. 언제나 꼿꼿한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 바르지 못한 것에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던 꼬장꼬장한 선비 이오덕도 결국에는 따뜻하고 푸근한, 우리네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옛 시절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감자 먹고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또렷이 살아난다. 동무들이랑 콩딱콩딱 뛰어다니고, 뜨거운 감자를 '하아' '호오' 불어 먹고, 아버지 일하는 들에서 새참으로 감자를 먹는 순하고 착한 아이, 그 아이는 그렇게 자라나 감자 먹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이름 없이, 소박하게, 정직하게 살고자 했던 이 시대의 큰 스승 이오덕 할아버지가 살아온 수수한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그를 이해하고 더 가까이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품 안에서 듣는 옛 이야기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그림은 아이들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 화려한 컬러 대신에 '목탄'으로 그렸다. 글과 어우러져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인 만큼, 단순하고 소박한 글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가루를 낸 목탄과 목탄 연필을 캔버스에 덧바르며 작업한 그림에서는 흙냄새, 감자 먹고 일하며 살아온 농사꾼들 냄새, 뜨거운 감자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공 받듯이 받아먹는 까맣게 탄 시골 아이들 냄새가 가득하다.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감자를 통해 조용히 말씀해 주셨다. 안방과 정지 샛문으로 어머니가 젓가락에 찍어 주시던 감자가 아마도 선생님의 삶을 지켜 준 텃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말씀보다 따뜻한 감자로 모든 걸 가르치신 것이다 .. <머리말 : 권정생 씀>
그림책 <감자를 먹으며>를 봅니다. 감자 한 알 먹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참 대단하구나 싶어요. 머리말을 쓰신 권정생 선생님 말마따나 '온갖 말이 아닌 따뜻한 감자 한 알'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거든요.
감자를 심고, 캐고, 삶거나 구워서 나눠 먹습니다. 둥글둥글 울퉁불퉁하면서 고픈 배를 채워 주는 감자 한 알. 이 작은 그림책 <감자를 먹으며>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넬까요?
겨울이면 정지 샛문 열고 내다보는 내 손에 쥐어 주며
꼭 잡아 꼭!
봄 가을이면 마당에서 노는 나를 불러
김 무럭무럭 나는 그 감자를 주며
뜨겁다 뜨거, 후우 해서 먹어! <14쪽>
요즘도 이렇게 감자를 먹는 아이들이 있을까 모르겠군요. 푸욱 삶아서 젓가락으로 찌르면 쏘옥 들어가고, 그렇게 젓가락 하나가 쏘옥 들어갈 때 꺼내어 한 알 집어 주면서 "뜨겁다 뜨거, 후우해서 먹어!" 하는 어머니와 아이가 지금도 있을까요?
제 어릴 적을 생각해 보니 삶은 감자를 잘 안 먹을까 봐 설탕을 함께 놓곤 찍어 먹으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자맛은 달콤하지도 않고 매콤하지도 않고 그냥 '감자맛'이라 해야겠군요(아마 제 입이 어릴 적에 너무 단것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단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구수한 감자맛을 더 좋아하는 입으로 바뀌었습니다).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다가 입천장이 데기도 하고, 우걱우걱 씹으면 목이 메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물을 한 대접 들이키기도 하고…. 감자맛에 익숙해진 뒤로는 소금을 찍어 먹었고, 이제는 그냥 먹습니다. 그저 감자맛 그대로가 좋아서요.
후후 후우, 허어 허어, 냐음 냠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자라났다.
밥을 먹기 전에 감자부터 먹고
가끔은 삶은 것을 점심으로도 먹고 <18쪽>
가난한 집에서는 학교 가는 아이 도시락에 감자 몇 알 들어 있기도 했답니다. 도시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만 시골이나 산골 학교에서는 잦았다지요? 어느 산골학교 선생님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조그마한 분교에 있을 때 반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는데 모두 똑같은 감자를 싸오더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하나씩 서로 집어먹으면서 "아무개네 집 감자가 참 맛있네", "이 감자도 맛있네"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릴 적에 낮밥을 감자로 때운 적이 더러 있었는데, 가난한 집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끼니를 감자로 때우기도 한 게 아니냐 싶어요. 감자로도 끼니를 나고, 옥수수로도 끼니를 나고 말이에요. 요새는 햄버거 하나로, 돼지고기튀김(돈가스)으로, 또 뭐 컵라면이니 뭐니 하는 먹을거리로 끼니를 대충 때우겠지만요.
차근차근 생각해 보아요.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며 부대끼고 느끼는 맛, 입맛과 밥맛을 차츰차츰 잃어가지 않는가요? 저는 올해 '산딸'과 '딸기'가 어떻게 다른지 처음 알았습니다. 나이 서른에 이르러 처음으로요. '산딸'은 산 곳곳에서 자라나는 열매이고, '딸기'는 밭에서 따로 길러서 먹는 열매라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산딸'을 보통 '딸나무'라고도 한대요. 우리들은 '산딸기'라고 말하지만 '산딸기'가 아니라 '산딸'이라 해야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산딸맛'을 제대로 맛보며 자라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요? 개암이나 오디나 보리똥은 어떻고요.
이윽고 쑥 향기 물씬 밴 뜨거운 감자를 파내어
후우 후우 불면서 먹던 그 맛
잘 익어 터진 북해도 흰감자
껍질을 훌훌 벗기면 아이 뜨거!
야무진 자주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아이 뜨거!
뜨거워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공 받듯이 받다가
한입 가득 넣으면 입 안에 녹아드는 그 향기 그 맛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 맛
아른아른 여울물에 헤엄치는 피라미들의 이야기까지 들어 있는
그 모래쑥 향기 듬뿍 밴 감자 맛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쳐다보는 머리 위 미루나무에선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보리매미들이 온통 사납게 울어쌓고...... <27쪽>
삶은 감자에서는 달고소한 맛을 잘 모르지만 불에 구워먹을 때는 감자에만 있는 남다른 달고소한 맛이 있는 듯해요. 아이고. 이 글발을 읽으니 감자 한 입 썩 베어물고 싶습니다.
그제 밤, 벼락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밤에 보리매미를 보았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니 제가 사는 방 창문에 붙어서 붕붕거리며 안으로 들어와서 비를 긋고 싶어 하는 매미를 보았어요. 요즘은 보리를 다 거두어들이는 때라, 보리매미가 나올 때거든요. "보리 거둘 때 나와서 우는 매미"라 해서 '보리매미'라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나빠지니 보리매미도 해마다 줄어들고 올해는 보리매미 울음소리도 거의 못 듣습니다.
가만가만 헤아려 보아요. 감자맛은 감자맛대로 잃고, 보리매미 소리는 또 보리매미 소리대로 잃어가지 않나요? 한여름에 귀가 따갑도록 우는 '말매미' 소리에만 익숙하여 보리매미나 쓰르라미 소리와 말매미 소리를 제대로 나누어 듣지 못하는 우리들로 바뀌지 싶습니다. 맛도 잃고 소리도 잃고 또 눈도 잃고 느낌마저 잃어서 우리 사는 세상이 참 팍팍합니다. 사람냄새, 사람 맛도 모두 사라지고 "경쟁과 싸움과 돈 욕심과 이기주의"만 판치도록 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사시사철 감자로 살아 내 몸도 마음도
이런 감자빛이 되고 흙빛이 되었지.
후우 후우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또 책을 읽었다.
감자를 먹으면서 글을 썼다.
감자를 먹고 학교 선생이 되어서는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산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28~32쪽>
감자 모습처럼 둥글둥글, 감자맛처럼 달고소. 이런 모습과 맛 그대로 살아오며 아이들을 가르치셨기에 우리들이 지금도 우러르고 좋아할 수 있는 분이 아니냐 싶습니다. 감자빛으로, 흙빛으로 자기 모습을 가꾸고, 자기 생각과 마음을 다스린다면 이 세상 누구에게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보아요. 벼빛으로, 보리빛으로, 사과빛으로, 감빛으로, 오얏빛으로 다가간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싫어할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처럼 후우 후우 감자 먹기를 좋아해서
감자 먹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가서
오두막집 지어 사는 꿈을 꾼다. <37쪽>
이오덕 선생님 방에는 "감자를 먹는 농사꾼들 모습이 담긴 고흐 그림(복사본)"이 잘 보이는 자리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 뜨끈뜨끈한 감자를 쟁반에 담아 놓고 /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 감자를 먹으면서 / 그 날의 들 이야기를 하는" 그 그림을 참으로 좋아하셨어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잖아요. 일하고 땀흘리면서 자기를 가꾸고 털털하게 살아가는 그네들이 바로 이오덕 선생님 자신이고,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이고, 자라나서 어른이 되어 다시 자기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그렇다.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41쪽>
'교회당 하느님'이 아니라 '일하는 농사꾼과 함께 감자를 즐겨 먹는 하느님'을 믿은 이오덕 선생님입니다. "김치나 된장을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나와 같이 살아온 '할아버지들의 세계'를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보아서 <감자를 먹으며>를 쓰셨다는 이오덕 선생님.
소박한 시 한 편에 살가운 그림이 어우러지니 참 푸근합니다. 들뜨지 않고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땅을 사랑하고 흙빛 얼굴과 손으로 감자를 묻고 캐고 먹는 주름잡힌 손을 고이 담아낸 그림이 가득한 <감자를 먹으며>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가 죽어서 돌아갈 흙이잖아요? <감자를 먹으며>는 우리들이 도시에 살고 도시 문명에 젖어들면서 쉬 잊고 말거나 멀어져 가지만 참으로 소중한 감자 이야기를 건넵니다. 땅과 사람 이야기를 건네요.
살가운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반가운 그림책 <감자를 먹으며>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 삶과 땅과 사람을 사랑하고 믿는 그림책을 꾸준하게 펴내면 더 좋겠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시와 이야기뿐 아니라 참으로 살뜰하고 아름다운 분들 시와 이야기로 그림책을 엮어나간다면 이런 그림책을 보고 자랄 아이들도 좋고, 함께 즐길 어른에게도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