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오래 살다 온 분이 "손가락 넣어서 돌리는 전화는 이제 한국에는 없네요" 하시는게 아닙니까. 그리고 보니, 손가락 넣어서 디르르르 디르르르 하고 돌려대던 전화기는 이제 우리의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휴대폰이 거리에 넘칩니다. 우리의 정보통신 산업이 이만큼 발전했소 하는 뜻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보아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데도, 이 거리를 걸어가며, 저 골목에 서서 전화들을 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더군요.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놓고는 "나 지금 엘리베이터 안인데, 잘 안 들리지? 내려서 전화할게" 이러고 끊더군요.
어디 전화만인가요. 언제까지 그 사용법을 배우면서 따라가며 살아야 하나 싶게 여러 첨단 제품들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전화만큼이나 일반화된 것이 컴퓨터입니다만, 초기에 어느 회사에서 서류를 종이에 만들어 오곤 하는 부하에게 부장이 "컴퓨터에 올리라구!" 하며 호통을 쳤답니다. 그랬더니, 얼마 있다가 보니까 이 부하가 서류를 컴퓨터 위에 올려놓고 갔더랍니다.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매체들 그 가운데서도 통신 매체의 발달이 눈부신 요즈음입니다. 자고 나면 낯선 것들이 새롭다는 이름으로 "날 좀 보소!", "나 이쁘죠?" 하며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내 옆에서 그래도 여전한 것은 아침의 우유 배달 아저씨와 조간 신문을 넣는 아줌마의 자전거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변했습니다. 새것 좀 안 쓰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차라리 그립습니다.
--- pp.128-129
무엇인가를 보기위해서 ,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해서 가는 여행, 그 나그네 길이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서 조금 더 즐겁거나 지루한 차이는 있겠지요. 그러나 본질은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찾아가는 그곳, 만나려하는 그 누구, 그것이면 되는게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따금 말하고 했습니다. 살고 싶은 여자와는 못 살아도 좋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나 더 깊은곳,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곳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아주 작은 물음은 아닐까요.
--- p. 237
나무에게서 늘 많은 것을 배웁니다. 움직이지 않는 한평생 잎 틔우고 꽃피우고 열매를 익힌 뒤 남은 잎 다 떨어뜨리고 겨울을 나는 그 정직성.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무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 무엇도 빼앗지 않습니다. 어느 그림 동화처럼 모든 것을 다 주고 삽니다. 크고 많은 나무를 찾아 멀리 찾아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며 집 안에 나무를 심습니다.
그런 속에서 여름을 나고 싶습니다. 정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먼 곳에서 올 친구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꿈 깨라고....여기는 서울이라고.
--- p.131
“기다리지 않아도 눈은 내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
젊은 날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서, 때가 되면 봄은 왔습니다. 그러나 이 봄을 맞으며 나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은 봄, 그렇게 맞는 봄이 봄일 수 있을까. 연구실 창 밖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은 봄은 봄이 아니라고.
--- p.32
“기다리지 않아도 눈은 내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
젊은 날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서, 때가 되면 봄은 왔습니다. 그러나 이 봄을 맞으며 나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은 봄, 그렇게 맞는 봄이 봄일 수 있을까. 연구실 창 밖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은 봄은 봄이 아니라고.
---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