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카오루는 스토리 자체보다도 자신이 덕질하는 걸 그림으로 풀어놓는 걸 더 즐긴다는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한번 꽂힌 것, 본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주 집요하다 싶을 만큼 파고들어서 그림으로 구현해 낸다. 이것은 모리 카오루 외에 극소수의 작가들에게서만 엿볼 수 있는 장점이자, 모리 카오루의 최대 단점이기도 한 것 같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역시나 다양한 신부들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출연한 아미르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대들보가 되는 듯하다. 신부 아미르를 둘러싼 싸움이나 그 이후 있었던 러시아를 등에 업은 비단 부족과의 전투는 그만큼 임팩트와 박진감이 넘쳤고,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주인공 부부의 앞날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흥미를 유발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런데 작가가 중앙아시아에 조사차 직접 다녀왔다는 후기가 책에 실리기 얼마 전부터, 서사가 약해지고 작가의 "집착", 혹은 "덕심"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극대화되어 이질적인 느낌이 절정에 이른 것이 목욕탕과 두 신부의 이야기. 목욕탕에 맞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그림체도 바꿨다고 작가가 후기를 쓰기는 했지만, 그림체와는 별개로 나머지 신부들의 이야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든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단순히 "백합물"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 이전에 나왔던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나 하다못해 스미스의 사랑 이야기에서조차도 빠지지 않았던 "현실"의 느낌, "현실 속에서 가장 적합한 상대를 찾고 저마다의 사랑을 꾸려나간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전적으로 작가의 환상, 작가의 페티쉬를 만족시키기 위한 배경과 스토리라는 것이 내가 받은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스미스를 따라 항구도시까지 나온 작가는 11권에서는 사진기에 거의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인다. 아, 이 작가, 19세기 사진에도 관심이 있구나, 같은 느낌 외에 딱히 감흥을 불러일으킬 만한 서사랄 것이 없는 한 권. 사실 11권까지 나온 이야기 가운데서 스미스의 사랑 이야기가 제일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과부 탈라스보다는 스미스의 문제가 더 큰 거 같다. 전체적으로 밍숭맹숭하고, 딱히 매력 있는 인물상은 아니다), 이 지루한 느낌에 카메라에 대한 집착까지 더해지니 더욱 불안해졌다. 이 작가... 왠지 점점 더 심하게 삐딱선을 타지는 않으려나? 앞으로의 전개를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작가가 관심을 보이는 문제를 일일이 독자에게 떠먹여주는 걸 반복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