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개신교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태동했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타락하여 면죄부까지 팔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말씀의 실종’에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성직자가 성경의 진의와는 사뭇 다른 허위 사실을 유포하자 ‘불량식품’을 먹고 자란 교인들은 루터가 주창한 95개조의 반박문이 발표되기 전까지 스스럼없이 면죄부를 샀다. 그래야 속죄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에 말이다.
“시골뜨기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피르케이 아보트 2:6)
탈무드에서 말하는 ‘시골뜨기’란 말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즉,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과 죄를 두려워할 수 없으므로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데다, 임의로 말씀을 재단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함에도 성도는 이를 분별할 ‘눈’이 없기 때문이다. 교역자가 바른 틀(교리)과 수단(언어/문화적 지식)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좋으련만 자의적인 해석으로 기독교의 본질과 기틀을 마구 흔들어놓는가 하면, 성경에는 찾기 힘든 신비주의를 들먹이며 말씀에서 더욱 멀어지도록 ‘바람을 잡는’ 자들이 교회와 사회에 적잖이 포진해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랍비가 아니면 성경을 가르칠 수 없다지만, 한국교회는 교사가 모자라거나 없으면 성경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끌어들여 성도를 교육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공부의 주 교재가 성경이 아닌 공과책이 된 것도 안타까운 현실 중 하나다.
그러니 하나님은 누구며, 예수와 성령은 누구며, 교회는 무엇이며, 주일은 왜 지키며, 헌금은 왜 드리며, 새벽기도는 왜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까닭도 모른 채 종교행위의 일환으로 ‘마당’만 밟는 사람들이 개신교 인구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이런 무지한 성도를 내버려두지 않고 저 나름대로 끊임없이 ‘동화’ 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의 말씀(구원론)을 곡해할 요량으로 각 종교를 한 데 섞는 ‘혼합주의’를 부추기는가 하면, 비성경적인 세속문화를 교회에 심어 하나님과 주일과 예배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교회는 자력으로 이를 분별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존경깨나 받는다는 지도자들이 선뜻 WCC 총회(종교다원주의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음)를 유치하고, CCM과 팝음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하나님과 말씀의 권위가 바로서는 날,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말씀이 말씀 되는 날, 전도와 찬양 및 예배가 회복되고, 비기독적 관행과 상투어는 자취를 감출 것이며, 한국교회의 방황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