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의 뒤로 돌이 우박같이 떨어져 내렸다. 대부분은 엉뚱한 곳에 떨어졌지만, 몇 개는 현암의 몸에 맞기도 했다. 현암은 정 선생과 미리의 시신에 돌이 맞지 않도록 몸을 추스렸다. 그런 뒤 현암은 터벅터벅 걸었다. 돌은 계속 날아왔고, 돌에 맞는 것보다도 더 아픈 욕설과 기도성과 외침소리들이 광기처럼 현암의 귀를 괴롭혔다. 그러나 현암은 곧은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터벅터벅 발을 번갈아 내딛을 뿐이었다.
'이게.... 이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이구나.... 그렇구나....'
그렇다. 백 목사는 악인이 아니다. 오히려 선량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사탄보다도 더 악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이고, 그것이 바로 악마의 수법일지도 모른다고 현암은 생각했다.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현암은 깨달을 수 있었다.
--- p.178
'우사의 길...우사의 길이라...'
준후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을 저릿하게 하는 통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비록 오천 년이라는 시공의 간격이 있었지만,우사 맥달의 마음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것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지금으 ㅣ번민과도 흡사했다.정의를 위해,보다 큰 길을 위해.....자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지금 준후의 마음은 분명 박신부나 현암과는 달라져 있었다.
준후는 맥달이 남긴말,특히 이토록 쓰라린 것인 줄 알면서 어찌 이 길을 걷지 않을 수가 있으랴는 말이 처절하게 공감이 되었다.아니,맥달이 이미 오천 년 전에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어 깨우침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래,나는 악인이 될 필요가 있으면 악인이 될 테다.분명 맥달은 그런 뜻을 나에게 전한 것이다.나밖에는 없다.나밖에는...'
--- p.241
말세편을 쓰면서 나는 종말, 그것도 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다. 나도 인간인 만큼 죽음과 종말이라는 말은 두렵다.
사실 그 누구라도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죽음만이 아니라 '인간세상이 통째로' 망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라도 공포를 안겨줄 만한 일이다. 실제로 말세를 부르짖으며 '이제는 끝이다' 라는 식으로 일어난 광란은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몇 차례나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있지 않을까 싶다.
[퇴마록] 말세편의 화두는 사실 내 스스로 이미 수십 년 동안이나 나름대로 생각해오고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세편'에는 말세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예언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세란 이런 것이다' 하고 미리 짚어내어 밝힐 재주는 없다.
그러나 퇴마사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세가 올지 모르는 위기를 알게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운다. 퇴마사들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말세가 어떻게 오는지 알지 못한다. 솔직히 본문을 보면 각각 다른 양상으로 말세를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말세를 그리면서 두려워한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여 뚫어볼 사람은 없으며 실제로 그들은 말세의 양상을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그들은 물론 누누이 말했듯, 몇 가지 뛰어난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말세편은 다소 슬프다. 퇴마사들은 악령과 악당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과 정의와 싸운다. 물론 그 선과 정의는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선과 정의이기에 악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악은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더욱 힘들어하고, 더욱 괴로워하며 더욱 고통받는다. 나도 그들을 창조해낸 아비 입장에서는 쓰기에 슬프지만,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헛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방법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이지만 역으로 그 한계가 실제로 인간이 말세를 맞아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말세편은 애초에 하나의 단일구조로 만들려 했으나 계획을 수정하여 국내편 때의 옴니버스식 구성을 다시 살리기로 했다. 그리고 분량은 대략 3권 예정이다. 1권 초두는 말세편만이 아니라 내가 쓴 판타지적 글에는 빠지지 않고 통사적으로 등장하는 '해동감결'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다음에는 퇴마사들의 변모를 알려주는 단편 4개가 있다. 그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말세편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 근간을 이루는 주 내용은, 첫째 각 신앙에서 다루는 말세의 이야기이며, 둘째 용봉문화설에서 파생되는 우리 고대사의 이야기, 셋째 인간의 믿음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전체 시리즈로서는 마지막 편이라고 생각하니 전에 없이 어깨가 무거운 것이 느껴진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어깨가 무거워진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면모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이제야 드디어 그동안 혼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터뜨리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원래 퇴마록은 말세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는 것으로부터 구상이 시작되었다. 벌써 시작된 지 5년이 넘은 시리즈이지만 그 마지막을 아직도 잊은 적이 없다. 긴 시간과 글쓰기의 나날이 지나고 이제야 그 장면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할 뿐이다.
바라건대, 이 말세편이 그동안 많은 분들이 아껴주신 퇴마록의 마지막 내용이 되기에 손색이 없게 나오기를, 다른 열렬독자들이나 누구 못지않게 나 또한 바라는 바이다. 아울러 그동안 [퇴마록]을 성원해주시고 읽어주신 많은 독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남긴 작은 글은 큰 바다를 건너 알지 못할 사람들 속에 묻혔으나 그래도 알 수 있는 사람들 손에 있을 것이다. 여자만이 온천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며 악한 자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으리. 그러고 난 다음에도 세상을 구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가 이루어져야 하리. 천부인이 세상에 풀리고 내가 남긴 큰 글이 얻어져야 하며 뜻을 지닌 네사람과 열 사람이 필요하리라..
---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