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대 후반에 갑작스런 실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었다. 사실 30대를 지나면서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삶이 규정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경험하고 목격하게 된다. 결혼만 해도 그렇다. 누군들 좋은 배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 않겠는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했지만 금세 갈라서기도 한다. 성실하고 건강했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큰 병을 얻는 것은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운명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촉망받던 인재가 불운으로 꺾이기도 하고, 어쭙잖은 부류가 행운을 맞아 날개를 달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을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마흔이었다. --- p.25
마흔부터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삶이다. 목숨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무한부담, 무한책임의 삶이다. 혼자 사는 젊은 시절의 삶은 오롯이 나의 문제였지만 마흔 무렵부터는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역할과 책임이 나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나의 의사결정이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40대의 인생도 매일 일하지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일한다. 여기서 타인이란 부모님, 아내와 자녀 등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봉사하는 타인이기도 하다. 추상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헌신일 수도 있다. --- pp.30-31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30대까지 모색기이고 40대는 전진기이다. 20대까지의 학창시절과는 달리 30대는 사회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하면서 실질적인 적성과 재능을 모색하고 확인한다. 평범한 직업인의 입장에서 천재, 대가의 경지를 운운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각자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30대에 방향을 잡고 경험을 쌓아 40대에 발전해 인정받는 전문가로 자리 잡는 경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재능을 내리고 노력하면 자신의 길을 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타고난 역량을 40대에 만개시켜보자. --- p.41
세월이 흘러 중년에 접어들어 만나는 어릴 적 친구들은 오랜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반백의 모습 속에 읽혀지는 어린 시절의 얼굴에서 반가움을 느끼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길지 않은 인생살이에서도 부침은 항상 있게 마련임을 실감한다. “길고 짧은 것 대봐야 알고,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는 예전 어른들의 말씀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 고생하던 친구가 사업에 성공해 부러움을 사고, 반대로 착하던 부잣집 막내아들이 형편없이 추락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노력과 운명의 합주로 엮어나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성공과 영락의 이유를 가끔씩 생각해보게 된다. “빈천은 근검을 낳고, 근검은 부귀를 낳고, 부귀는 교사(驕奢, 교만과 사치)를 낳고, 교사는 음일(淫逸, 방종과 나태)을 낳고, 음일은 다시 빈천을 낳는다.” 우연히 접한 이 글귀에 인생유전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빈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다시 빈자가 되는 핵심이 바로 이 짧은 구절에 압축되어 있다. --- pp.42-43
나는 성장기에 어르신들의 “젊어서 버는 돈은 자기 것이 아니다. 나이가 되고 철이 들어서 버는 돈이 진짜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들을 때도 별로 공감하지 않았지만 말단 사원 시절에는 오히려 부정하고 싶었다. 나이 서른 정도 먹었으면 알 만큼 아는 나이이고, 일찍 벌어서 잘 관리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마흔 무렵은 되어야 철이 든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고 어떤 사람은 환갑이 넘어도 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내 세대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마흔 무렵이면 사회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이런저런 고민과 굴곡을 경험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서 세상과 인생을 보는 시각이 깊어진다. 30대 초중반의 성공은 우쭐해서 오히려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독소가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pp.48-49
40대에 위로받고 싶다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40대는 가족, 직장 등에서 역할과 부담이 크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도 쌓이는 시기이다. 가끔씩 삶에 대한 회의도 들고 나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상-힐링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며, 종교 활동에도 참여하며 심리상담도 받아본다. 모두 좋은 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힐링, 위로 등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삶이란 고단한 것이고, 특히 40대의 심적 부담을 힐링과 위로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과유불급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힐링, 위로도 지나치면 현실에서 마주해야 하는 삶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심지어 위로와 힐링도 마케팅의 흐름을 타서 현대인의 심리적 부담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없는 문제도 생겨나는 느낌이다.--- p.65
사회관계 속의 사람들은 어차피 속마음과 겉모양의 줄타기를 모두 하고 있다. 눈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로 기름칠을 해도 서로의 말과 행동을 주시한다. 항상 좋은 말이나 하는 연예인 부류와 필요시 강단 있게 행동하는 리더를 내심 정확하게 구분한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생활에서 평판과 신뢰는 핵심이다. 하지만 세간의 겉도는 평판과 입에 발린 칭찬은 수면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다. 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미숙하지만 휘둘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미움을 받더라도 필요에 따라 전략적으로 판단해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p.90
인생은 과거를 거울로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과거에 묻히고 현재에 매몰되어서는 미래로 확장할 수 없다. 40대가 아니라 60대에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인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령대에 따라 그 무게감은 다르다. 20대는 성장기이고, 60대는 마무리 단계이다. 60대는 오히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이 가장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40대는복합적이다. 40대는 인생의 전성기이다. 20~30대의 설익은 시도가 아니라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진지한 도전에 나설 수 있는 시기이다. --- pp.99-100
사람들은 나름대로 결핍감에서 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집요하게 추구하는 대상은 열등감의 반작용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집에서 성장하면 금전적 풍요를 갈망하게 되고, 학창시절성적이 좋지 않으면 학위나 타이틀에 관심이 많은 식이다. 이러한 열등감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상황이 좋아졌음에도 심리적 위축의 기제가 되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잘다듬어지면 성년이 되어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에너지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분기점이 마흔 무렵이다. 성장기에 형성된 열등감에대한 보상심리가 성인의 활동기에 영향을 미치는데,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재되어 있는 열등감이 갈무리되어서 에너지로 가는지, 아니면 숨겨져 있지만 계속 발목을 잡을지가 40대 무렵이다. --- pp.113~114
살아가면서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좋은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도 어려움이 닥치면 또한 누군가의 위로와 조언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습관성 징징거림을 들어주면서까지 살기에는 마흔 무렵의 시간이 아깝고 인생은 짧다. 사춘기 중고등학생이면 친구의 헛소리도 들어가면서 성장해간다고 하더라도 40대에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처음 몇 번은 공감할 수 있지만 여러 번 지속되면 피곤해진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고단한 인생에서 타인의 습관적 푸념까지 들으면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앞에서는 공감하는 척해도 돌아서면 경멸한다. 불평불만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마라. 긍정적 에너지를 나누어도 고단한 인생에서 부정적 에너지까지 나누어서는 앞이 안 보인다. --- pp.132~133
산업혁명으로 인성의 함양과 지식의 전달이라는 훈육의 기본이 혈족을 떠나 공공영역으로 나왔다. 정보화 혁명에 따른 정보와 지식의 확산으로 조직에서도 과거처럼 일방적인 집합교육 방식을 탈피해 일종의 일대일 방식의 공식적 교육인 멘토, 코칭을 도입하는 추세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의 생각은 현실에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가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서 손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고, 조직의 상사와 선배가 자신의 신입 시절처럼 신참에게 훈계하는 경우이다. 실질적 권위가 약화되었는데 형식적 위계에 기반한 훈계는 겉으로는 듣지만 속으로는 반발하는 면종복배面從腹背만 불러일으킨다. 마흔 무렵부터 어쭙잖은 충고와 훈계는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년이 되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다. 나름대로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필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방은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속으로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친자식들도 흔히 보이는 양상이다.--- pp.149~150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게 마련이지만 또한 보람 있고 기쁜 순간들이 교차한다. 부모님은 이 과정에서 언제나 자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인생의 나침반이자 평생의 멘토이다. 우리 모두가 부모님으로부터 세상을 대하는 통찰, 삶을 대하는 용기와 지혜라는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부모님이 연로해지실수록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자녀들과 이야기하실 수 있을 때 한마디라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정신이 맑으실 때 간단한 글이나 녹음이라도 미리 남기시도록 말씀을 드려 나중에라도 후손들이 생생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권한다. --- pp.186~187
40대는 취미활동도 왕성한 시기이다. 40대의 취미는 분주한 나날의 휴식을 주고, 50대 이후의 친구를 만들어가는 의미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친구도 가족도 의미가 달라진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곁을 떠나고, 배우자도 좋은 의미에서도 거리가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는 언제나 나의 곁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된다. 특히 혼자 할 수 있는 취미가 중요하다. 언제나 어디서나 내가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필요하고 사람이 모여야 되면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또한 취미도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세상만사가 통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특정분야에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이 통찰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도 긍정적 의미가 있다. --- p.199
삶의 요체는 완급조절에 있다. 무작정 부지런하게 움직인다고 결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 움직이고 쉬어갈 때 멈추어야 한다. 먼 길에서는 때때로 쉬어가는 나그네가 멀리 가는 법이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살아나간다. 나무가 사시사철 열심히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려 하면 겨울에 얼어죽기 십상이다.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열매를 키워서 가을에 결실을 맺고 겨울에는 앙상한 상태로 견뎌야 한다. 또 봄이 와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에, 추운 겨울을 생각하고 계속 움츠리는 나무는 성장의 계절인 여름을 헛되이 보내고 가을에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 마흔 무렵을 계절에 비유하면 초여름이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분주하며 성장하고 발전한다. 하지만 완급 조절도 필요한 시기이다. 때때로 쉬는 것도 투자이고, 참는 것도 발전이다. 인생은 마라톤이 연속되는 기나긴 여행이다. 언제나 몸이 부지런한 초식동물보다는 항상 머리는 부지런하되 몸은 결정적 순간에 움직이는 육식동물의 행동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 pp.211~213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간다. 시속으로 10대는 10km, 40대는 40km, 60대는 60km로 달린다는 비유는 매우 공감이 간다. 40~50대의 1년은 아동기의 1개월처럼 지나간다. 어린 시절에는 관심의 폭이 좁지만 나이가 들면 신경 써야 할 분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른 자동차가 자칫하면 방향이 흔들리듯이 나이가 들수록 방향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는 분주하고 길게 지나가는데, 1년은 의미 없이 순식간에 지나갈 수 있다. 특히 40대의 1년은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이다. 30대까지 준비 기간에서 축적된 역량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대 후반부터는 40대의 관성으로 흘러가는 시기라고 본다. 40대에 천천히 서둘러라.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