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휘와 어휘 능력
어휘(vocabulary)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지만 어휘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사용되는 단어(word)들의 집합’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를 따르지 않더라도 어휘는 단어들의 집합이며 그래서 단어란 무엇인가 혹은 낱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는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표준국어대사전)과 같이 간단하지 않게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인 정의로 보면 어휘와 단어를 형태인 측면에서 정의하고 있기에 어휘와 단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어휘의 정의에 매달리기 보다는 언어 능력의 기본으로서의 어휘 능력을 살펴보는 것으로 어휘가 무엇인가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어휘 능력(lexical competence)이란 교과서적인 정의에 의하면 단어를 정확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알아 사용하며,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추리해 내거나 지시적, 문맥적, 비유적 의미 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신명선(2008)에서는 어휘 능력을 어휘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능력,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의사소통 상황에서 어떤 대상이나 일, 현상 등을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명명하거나 명명화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였다. Chapelle(1994)은 어휘 능력을 언어에 대한 지식과 문맥에서 사용하는 지식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였는데 어휘 지식과 기본적인 처리 과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어휘 사용 맥락에 대한 지식, 그리고 어휘 사용의 초인지적 전략에 대한 지식까지도 어휘 능력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Capelle은 어휘 능력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어휘의 양과 단어의 특성에 관한 지식, 그리고 어휘 구성에 대한 지식, 기본적인 어휘 처리 과정에 대한 차이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어휘 사용 맥락을 안다는 것은 ‘결코’와 같은 부사는 항상 부정문과 함께 사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하다’ 같은 경우는 문장 안에서의 의미에 따라 반어적으로 잘하지 못한 경우에 ‘잘한다!’고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지식, 즉 사용 맥락에 대한 지식으로 보았다. 이런 맥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구어와 문어, 격식과 비격식, 일상적 용법과 학문목적 용법과 같은 차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맥락을 고찰하여 언어의 다양성에서 오는 해석이 차이 같은 것들도 고려하였고 예를 들어 세대 간의 차이와 같은 것들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맥락 이론의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어휘 능력이란 결국 언어 능력 혹은 의사소통 능력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 어휘를 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어휘 지식에 대한 논의로 좀 더 나아가 보겠다.
3. 어휘 지식의 범위와 깊이
학습자들이 알아야 하는 어휘의 모든 것, 그것은 무엇일까? 어휘와 관련된 모든 지식을 어휘 지식(vocabulary knowledge)이라 말하는데, 어휘 지식이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 역시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우선 어휘 지식과 관련된 논의를 살펴보면서 어휘 지식을 정의해 보기로 하겠다. Stahl(1983, 1986)은 어휘 지식을 정의하기 위해 어휘 지식의 형식을 두 종류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정의적 정보(definitional information)와 문맥적 정보(contextual information)가 그것이다. 정의적 정보는 한 단어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단어 사이의 논리적인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의 정의, 유의어, 반의어, 접사 등등의 정보를 말한다. 문맥적 정보라 함은 단어의 핵심 개념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이것이 다양한 문맥 안에서 어떻게 의미가 변화해 가는지를 포함하고 있는 정보이다. 어휘 지식을 획득한다는 것은 정의적 정보와 문맥적 정보가 함께 학습되어 질 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Nagy & Scott(2000)의 연구는 어떻게 모국어 학습자들이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가에 초점을 맞춘 연구이긴 하지만 어휘 지식이 무엇인지에 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지적한 어휘 지식의 다섯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휘를 안다는 것은 정도의 문제이지 모두 알거나 전혀 모르거나 하는 문제가 아닌 문제가 아니므로 이런 측면에서 어휘 지식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지식이다. 어휘 지식의 점진적 증가에 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이 논의해 왔다. 먼저 Dale(1965)은 단어지식 정도를 4단계로 나누었는데, 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단어 ② 들어본 적은 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 ③ 문맥 안에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단어, ④ 잘 아는 단어로 나누었다(재인용 Nagy 와 Scott, 2000). 그 후에 비슷한 연구들이 여러 학자에 의해 이루어져서 조금씩 단계가 추가되고 변형되었다. Drum & Konopak(1987)은 어휘 지식을 여섯 등급으로 나누어, ① 말로는 알지만 쓰기형태는 모르는 단어, ② 의미를 알지만 표현할 수 없는 단어, ③ 의미를 알지만 그 개념에 맞는 단어를 모르는 단어, ④ 단어의 부분적 의미를 아는 단어, ⑤ 단어의 다른 뜻을 아는 단어, ⑥ 개념과 단어 둘 다 모르는 단어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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