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의 그 행동, 약혼에 대한 승낙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그건, 그건…….” “윤지수.” 그가 반지를 낀 그녀의 왼손 손목을 꽉 움켜쥐자 지수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켜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 바로 위에서 낮게 깔린 그윽한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숨결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날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여자는 오직, 내 여자 혹은 내 신부가 될 여자뿐이야. 넌 어느 쪽이지?” “난…… 내가, 내가 아빠를 실망시킬 일을 하지 않을 거란 거 알잖아요.” “그래. 그래서 네가 약혼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왜 선택하라고 강요한 건데요? 나한테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주지도 않을 거면서요!” 양심의 가책 없이 말하는 지환을 보자 그녀는 화도 나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강하게 따졌다. “왜냐하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고 선택한 것에는 책임과 의무라는 보이지 않는 구속력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건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지.” “아무리 그래도 2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어요. 더구나 환이 씨는 나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희생을…….” 그녀의 말은 불쑥 눈앞으로 다가온 그의 강렬한 눈빛과 맞닥뜨린 순간 힘을 잃었다. 그리고 지수가 놀란 숨을 훅 하고 들이마신 순간 그의 열기 어린 단단한 입술이 살며시 지수의 입술을 건드렸다. “훅.” 아주 살짝 스치듯 지나간 살갗끼리의 마찰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을 건드린 것처럼 지수의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웠다. 그리고 연이어 다가온 지환의 입술은 마치 도장을 찍듯이 그녀의 입술에 짧지만 강한 압력을 가한 후 아주 천천히 멀어졌다. “하아.” “잘 들어, 윤지수. 이런 건 희생이라고 부르지 않아. 욕망이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