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들에게 안전지대가 있는 건 이유가 있다. 누구나 안정을 느끼고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안전지대는 추울 때 덮는 담요처럼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평생 이처럼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다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죽고 난 뒤 묘비에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두 같다. 바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빛나는 모든 순간은 우리의 안전지대 밖에 자리한다. 어떤 것은 좀 가까이, 또 어떤 것은 좀 멀리 있을 뿐이다. --- p.6~7
긴장이 생겼지만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중간지대에 있을 때 이 상태를 ‘적정불안 optimal anxiety’이라고 부른다. 이 지점은 안전지대에서 단 몇 걸음 밖에 위치한다. 적정불안 상태에서는 실행력이 높아질 정도로만 스트레스를 받고, 생산성이 떨어질 만큼 고통스럽지 않기에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자신을 이 중간지대로 나아가게 한다면 목표 달성에 필요한 능력을 가장 빨리 높일 수 있다. --- p.20~21
그러니 두려움을 없애고 안전지대를 벗어나려면 자신을 매혹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라. 이는 갑자기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이전에 조금도 흥미가 생기지 않아 그만두었던 것들까지 면밀히 살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흥미를 끄는 무언가를 찾고 나면 탐험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놀라움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력을 생각보다 더욱 키울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을 닫으려 해도 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 p.62
뭔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믿음은 우리의 존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깨워주고 일상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은연중에 형성된 믿음이 자신을 안전지대에 가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 p.95
완벽이란 비현실적이고 성취 불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완벽주의는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핑계를 대는 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안전지대에서 나가지 못하게 정면으로 막고 있다면, 당신은 그저 그 생각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뿐이다. --- p.106
불편함을 스스로 견디다 보면 욕구의 교활한 특성을 이해하고 역이용할 수 있을뿐더러 시간이 흐른 뒤에는 물리적인 욕망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불편함에 너무 익숙해져서 안전지대의 경계를 조절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제력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보자. 당신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충분히 있다. --- p.131~132
또 다른 자아는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되고자 하는 모습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아준다. 일상적인 장소에서 비치는 틀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다른 사람으로 활동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자아를 만들고 그 자아가 되는 과정은 실제로 삶을 개선할 단서를 제공해준다. 또 그 자아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해준다. “두려움이 없는 나의 또 다른 자아는 무엇을 할까?” 이 질문은 “용기를 가져야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이를 극복하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답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다. --- p.154~155
인간은 대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면서 동기를 얻는다. 보상과 처벌이라는 이 이분법은 흔히 ‘당근’과 ‘채찍’에 비유된다. 자신을 자극하는 당근과 채찍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은 목표를 향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방식 모두에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진짜 요인을 알게 된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두려움을 뒷전으로 밀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