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묵 인간 내면의 순수성과 선량함을 옹호하며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이를 표현하려고 했던 소설가.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35년 《백치아다다》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후 콩트풍의 단편을 주로 썼으나, 짧은 작품일수록 기교를 중시하고 예술적인 정교한 맛이 풍부한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김남천 사회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 1931년에 임화 등과 함께 귀국, 카프 제1차 검거 때 카프 문인 중 유일하게 기소되어 2년의 실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장편소설 《대하》 이외에 창작집 《소년행》 《삼일운동》 《맥》 등을 발표했다. 이후 월북하여 1948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나 1953년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되었다.
이병각 1930년대에 평론, 산문, 시에 이르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했던 시인이자 문학가.1930년부터 청년운동과 민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조선일보〉의 기자로 활동하며 1935년 이후부터는 잡지, 신문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1941년 후두결핵으로 사망했다.
이효석 1930년대 한국 순수문학의 대표적 소설가.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후, 한동안 프롤레타리아의 시각을 대변하는 프로문학의 성격의 작품을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이후 《메밀꽃 필 무렵》 《석류》 《화분》 등 성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세련된 기교가 빛나는 작품을 발표했다. 1934년부터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1942년 5월 25일 사망했다.
채만식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지식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한 대표적 근대 작가.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세 길로〉로 등단한 이후 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이후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을 발표했으며, 이후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출간했다.
최서해 간결하고 직선적인 표현으로 근대 한국사회의 빈곤한 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신경향파의 대표적 소설가. . 1924년 10월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29년 〈중외일보〉의 기자로 입사, 1931년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사망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탈출기》는 살 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이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홍사용 1920년대 낭만주의운동을 주도했던 시인. 1900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 호는 노작이다. 〈개벽〉〈불교〉 〈삼천리〉 〈매일신보〉 등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자신이 손수 희곡을 써서 직접 출연하는 등 연극 활동에 정열을 쏟았다. 평생 작품과 생활 속에서 낭만적 정신을 추구했으나, 〈백조〉의 간행과 극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중 1947년 오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