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와 4%, 그리고 12.7%의 갈림길
인생에서 똑같은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가장 명확하게 보이는 경쟁, 그것이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학 입학 고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성공의 비율은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2009년 수능 응시생 대비 대학 합격률을 살펴보자. 실력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꿈꾸는 학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포스텍, 카이스트 5개 대학교의 모집인원은 1만 2,268명이다. 2010년 수능 응시생은 67만 7,820명으로 수험생 비율 1.8%만이 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1%가 농담이 아니다. 이 5개 대학에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이화여대를 합쳐 10개 대학의 모집인원과 비율을 알아보자. 10개 대학 모집인원은 2만 6,517명이고, 2010년 수험생 가운데 3.9%만이 입학할 수 있는 숫자다. 각 나라마다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들의 비율 4%와 다를 바 없는 수치다.
그렇다면 흔히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인 서울(in Seoul)’ 대학은 어떤가? 2010년 수험생 가운데 12.7%만이 서울에 적을 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56.2%만이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과 매년 쌓이는 통계수치와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혹은 이렇게 살벌한 현실을 들이밀어도 자신만은 통계수치 밖의 특별한 사람일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희망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하지만 그것은 위로일 뿐이다. 이제 공부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했다면, 냉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시작이다. 더 이상 이 통계수치를 외면하면 안 된다.
서울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들어본 대학 외에는 생각도 못했던 학생들도 자신의 전국 등위가 통계수치 안에서 어떤 위치인지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혹은 어느 날 갑자기 ‘공부의 신(神)’이란 소리를 듣게 된 아이들은 바로 이 현실부터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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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확신의 정체
선행학습은 전형적인 딴전이다. 사람들은 100점을 맞으면 무턱대고 좋아한다. 하지만 과연 그 시험 범위의 개념도 100점으로 완전무결하게 정리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교과과정을 공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개념이 완벽하게 머리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다음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숫자만 본다. 어설프게 쌓아올린 개념은 쓰레기일 뿐이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빈 터인 채로 책상에 앉은 아이들이 훨씬 빠르게 실력을 쌓아간다. 학생들은 매번 자신이 알고 있었다고 착각한 개념과 실제 받아들여야 할 개념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다.
또한 이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주도형 학습’에 중독되어 있다. 스스로 계획을 짤 줄도 모르고, 따라서 무엇에 성취감을 느낄 줄도 모른다. 이런 유아적인 학생들에게 위협을 느낄 경쟁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너무나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게 만드는 학생들. 거대한 산처럼 늘 자리를 지키는 학생들. 자신만의 지도를 가진 것처럼 한 발 한 발 거침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이 갖고 있는 집중력, 인내력, 주도적 학습력의 밑바탕에는 아주 강한 자기 확신, 그 단단한 바탕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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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실력은 결코 네 실력이 아니다
기본 개념을 익혀야 할 학생에게 교과서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선생, 제대로 읽지 않아도 정답을 맞힐 수 있다고 말하는 선생, 질문을 회피하는 선생의 수업은 들을 필요 없다.
“수업을 듣지 말고, 수업을 하라!”
수업에 임하는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수업 시간에 멍하니 듣고 있지 좀 마라. 내 머리가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건성으로 지나쳤는지, 따라서 무엇을 놓쳤는지 항상 분주해야 한다. 만일 놓쳤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 그 순간 바로 손을 들고 질문하라. 얼굴에 초강력 철판을 깔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겠다고 결심했으면서 남들의 시선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수업이 끝났으면 반드시 복습해야 한다. 특히 수학의 경우는 필수다. 해설지나 해답을 보지 않고 자신의 접근 방식으로 문제를 분석해봐야 한다. 이 과정을 괴로워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 없이는 수업 시간도 무의미하다. 따라서 괴로워도 슬퍼도 반드시 해야 할 과정이다.
충분히 예습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필기하지 않는다. 팔짱을 낀 채 선생님이 칠판에 풀어나가는 문제 풀이 과정을 집중하면서 지켜볼 뿐이다. 그러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여 이해해간다. 이렇게 해서 수업 시간이 끝나면 당연히 뿌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예습도 충분히 했고, 선생님의 강의도 다 좇아갔다. 하지만 만일 여기에 만족하여 복습하지 않는다면 다음 시간에는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50% 이하로 줄어든다. 만족스런 수업일수록 그렇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해한 듯한 기분’에 속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전문가다. 숙제를 낸 사람이고, 몇 년간 강의해온 사람이고, 문제 풀이에도 능하다. 준비된 선생님의 분석을 넘어설 수 있는 학생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복습하라는 것이다. 만족스럽게 문제 풀이가 끝날수록 바짝 긴장한 채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만일 이 문제가 수능에 나왔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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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고사만 믿다가 뒤통수 맞지 마라
내신과 모의고사의 차이점을 알게 되면 학생의 현재 상태가 보인다.
* 모의고사 : 과거형 시험. 내신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범위가 넓다.
* 내신시험 : 현재형 시험. 모의고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범위가 좁다.
중요한 것은 과거형 시험과 현재형 시험이라는 차이에 있다. 모의고사를 과거형 시험이라고 하는 이유,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지나간 학습 과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고등학교 1학년의 첫 모의고사라면 그 범위가 중학교 과정이라는 것이다. 학생이 앞으로 치러야 할 수능에 어떤 것도 시사하지 않는 시험이다. 그저 시험 보는 경험을 했다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내신시험이 현재형 시험인 이유는 배운 부분을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범위도 좁고 문제도 단편적이다. 수능형 문제를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개념을 익힌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그 개념에 대해 확실히 이해했는지, 그것을 바탕으로 응용문제를 얼마나 풀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내신이 나쁜 학생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모의고사 등급도 동반 하락한다. 모의고사 범위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신이 좋았던 아이들은 같은 까닭으로 모의고사 등급이 점점 올라간다.
내신이 좋은 아이들은 매우 성실하게 학교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의 나태를 깨닫고 반성하며 현재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모의고사’라는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엉망인 내신을 대신하여 위로받는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내신과 모의고사의 성격을 제대로 안다면 엉망인 내신 성적을 감싸는 달콤한 모의고사 점수가 얼마나 위험한 독을 숨기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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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미 승리의 법칙―8단계 마인드 세팅 중에서
승리의 법칙1. 남들이 그린 지도를 접고, 마음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고1 때부터 계산해봐도 수능시험까지는 무려 3년이나 된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정보만을 가진 채 버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인생의 어떤 극적인 변화도 길게는 12년에서 짧게는 3년씩 예고해대며 오지 않는다. 목표가 확실하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면에서 많은 이들이 수능시험을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일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처럼 지루하게 긴 시간만 보면 어쩌면 ‘사막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기가 거기인 듯 똑같은 모래가 펼쳐진 사막, 한 발 한 발 굳은 땅 대신 발밑이 허물어지기만 하는 사막, 걸어도 걸어도 아련하기만 한 사막, 눈조차 신기루를 보게 되는 사막. 12년간 들어가고 빠지는 차이는 있을망정 변화 없는 과목들, 깊이와 넓이만이 달라질 뿐 비슷비슷한 제목의 교과서들, 하나를 알았나 싶으면 또 다른 곳에서 덜컥 드러나는 허점들, 다른 사람의 목표가 바로 내 것인 것도 같은 시간들.
학생들은 이런 시간의 사막을 지나 목표 지점이 있는 산을 찾아가고, 온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힘내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경험하고 그려놓은 지도는 참고사항일 뿐 자신을 위한 정답이 아니다. 좀 더 정확한 것은 어디에서든 확고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수능까지의 시간을 제대로,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겪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은 이미 여러분 안에 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속에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마음,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한 확신, 지금 당장 공부해야겠다는 실행 의지……. 무엇인가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그 마음이 가장 좋은 자신만의 나침반이다. 여기에 훌륭한 내비게이션까지 구비한다면 천하무적. 그 무엇도 겁낼 것이 없다. 주위의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 선배들, 독하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모두 여러분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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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전략―입시는 51 대 49의 합작품
공부는 물론 100% 학생 자신이 해야 한다. 하지만 ‘입시’라는 마라톤은 길고, 그 과정이 워낙 고생스러워서 내 아이가 51%를 뛰고, 나머지 49%는 부모인 내가 같이 뛰어간다는 ‘51 대 49의 심정적 전략’이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는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참 많이 노력한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자효녀들이다.
실제로 딴전을 피우던 아이들도 부모의 끝없는 믿음 앞에서는 변할 수밖에 없다. 저렇게 끝없이 믿어주는 부모를 더 이상 속일 수는 없다는 생각, 엄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내가 잘해야겠다는 심정이 아이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면에서 학부모들의 최대 무기는 미련할 정도로 자녀들을 믿어주는 ‘믿음’이다. 그래서 학부모 설명회에서 우리는 부모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린다.
“무조건 믿고 격려해주세요. 아이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세요. 틀린 것을 지적하고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 것은 저희 선생님들이 다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는 혼이 나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란 원래 그런 존재들이니까요. 하지만 집에서까지 그런 대접받으면 상처받습니다. 그렇잖아도 자기 실력이 잘 안 나오고, 선생님들의 지적이 다 맞으니 고치려고 노력 중인데, 부모님까지 혼을 내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심정이 됩니다. 믿어주시면 아이는 결국 제 갈 길을 가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다.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은 아이는 하나도 없다. 바보처럼 믿어주는 부모, 힘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부모님을 외면할 자녀는 없다. 아이는 그 믿음에 반드시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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