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갈등과 고뇌의 풍경: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괴테(1749~1832)
괴테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엄격한 성격의 법률가였으며,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한 아들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1769년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슈트라스부르크(현재는 프랑스령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여러 문인을 만나고 문학작품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쏟았다. 이 무렵 그는 유명한 사상가이자 문필가였던 헤르더를 만났으며, 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괴테는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1771년 변호사가 되었다. 1772년 고등법원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는데, 이 때 샤를로테 부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을 써서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1775년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동안 정치에 참여했다. 이 동안 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 과학 연구에 몰두했다.
1786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많은 독일인 예술가들과 교류했으며, 바이마르로 돌아온 후에는 이탈리아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산문 작품을 집필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이탈리아 기행』이다. 잠시 화가로서의 생활을 하기도 했다. 1791년 궁정 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이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을 했다.
문학 작품으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와 『파우스트』가 최고봉을 이룬다.
『파우스트』는 스물 세살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여든 세 살에 완성한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같은 이름을 가진 전설적 인물에 힌트를 얻어 괴테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괴테가 살았던 ‘천재시대’이자 ‘질풍노도’라 불리던 이 시기의 키워드는 단연 ‘자연’이다. 자연은 우주만물을 지칭하는 ‘외적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자연’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주관화 경향이라든지 범신론적 종교관, 자연에의 몰입, 귀족사회에 대한 서민적 반감, 민중적 삶에 대한 동감 등도 이러한 시각에 기인한다. 괴테는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 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시인이기도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부터 『빌헬름 마이스터』, 『친화력』, 『파우스트』, 『색채론』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는 중심 테제는 ‘양극성’과 ‘조화’이다. 감성과 이성,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빛과 어둠, 육체와 영혼 등과 같이 대립되는 양극은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조화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세계관이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삶의 조건으로 기능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악이 아니다’라는 괴테의 탄력적 시각은, 자신을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만들어내는 힘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를 통해 잘 드러난다.
괴테가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유행한 루소의 서간소설 『신 엘로이즈』와 리처드슨의 서가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감상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간의 내면 풍경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점과,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독자를 고백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서간소설의 독특한 매력을 활용했다.
총 82편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당시 괴테와 같은 젊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운명의 이야기이자 영혼의 초상이며, 그들이 앓고 있던 마음의 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공감의 서사’이다. 따라서 비록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보편적인 인간사를 품고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서사 공간에는 사랑이라는 내적 당위성과 도덕적 질서 간의 길항 구조 외에도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의 충동), 광기와 이성, 그리고 민중과 식자층 간의 팽팽한 긴장이 존재한다. 그 경계를 규정하는 것은 ‘문화’와 ‘정상’이라는 가치 기준이다. 따라서 베르테르가 추구하는 ‘자연’스럽고도 민중적인 생활방식이나 마음에 품고 다니는 죽음의 충동은 철저히 비문화적인 가치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는 베르테르와는 달리,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버린 알베르트가 대립되어 드러난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살을 택함으로써, 신분 질서와 이성 중심주의, 윤리적 심금 등 ‘문화의 카르텔’이 준엄하게 실현되는 ‘감옥’ 같은 세상을 등진다. 자연의 품처럼 따뜻한 열정을 키워내려 했던 베르테르에게 현실은 너무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서간체 소설의 새로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 서간체 소설 전통에 속해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우선 종래의 서간체 소설에서는 여러 인물이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괴테의 소설에서는 베르테르의 편지만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친구 빌헬름의 답신은 수록되지 않았기에 텍스트는 결국 독백의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새로운 점 가운데 하나였다. 다음으로, 괴테는 남성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웠다. 당시 서간체 소설은 여성 주인공의 내면 토로를 중심에 두었는데, 남성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 세계를 펼쳐 보인 서간체 소설은 이 작품이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물론 편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으며, 제2부 중반에 이르면 편집자가 등장하고 서술의 관점도 교체된다. 자살 직전의 베르테르가 더 이상 침착하게 편지를 쓸 수 없었던 처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편집자의 등장은 소설에서 상당히 개연성이 있다. 더불어 기능적인 면을 보자면, 편집자는 독자가 베르테르의 직접적 감정 토로에 거리를 두고 좀 더 냉정히 사건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개작본에서 괴테가 편집자의 역할을 증대시킨 점은 이런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사건의 전개 및 이와 관련된 베르테르의 내면 풍경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상승 국면과 하강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상승과 하강을 가르는 정점을 이루는 사건은 다름 아닌 알베르트의 귀향이다. 상승과 하강의 운동은 자연의 순환과도 결부되어 있는데, 첫 번째 국면이 전개되는 계절은 봄과 여름이며, 두 번째 국면이 전개되는 계절은 가을과 겨울이다. 더불어 소설 전반부에서 베르테르는 자연 예찬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알베르트의 등장 이후 자연은 베르테르의 편지에서 점점 더 위협적인 무엇으로 변해 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소설에서 부수적으로 전개되는 몇 가지 에피소드도 운명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주제와 표현방식이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고 있다.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던 주인공 베르테르는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우상과 같은 존재일 수 있었다. 자신들이 고루한 기성세대의 세계관에 눌려 실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베르테르가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소설을 통해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그렇게 세련되거나 정제되어 있지 않다. 주관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베르테르의 자살은 당시 일부 성직자나 문학평론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그렇게 젊은이의 일시적인 충동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베르테르는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로테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높은 벽에 좌절하면서 1년 반 동안을 방황한다. 그동안 베르테르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변화가 바로 이 소설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주인공이 자살하는 행위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고뇌하는 성찰과 명상이 어우러져 심오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한 아주 현대적인 소설이다.
둘째, 시민의식이 작품 전체에 끊임없이 표현되고 있다. 시민의식에 토대를 둔 시민적인 삶의 방식이 궁중이나 귀족의 문화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귀족문화나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반면, 시민들의 삶과 문화는 상당히 감정적으로 보이지만 다분히 합리적이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식 투성이고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역시 수사적이고 직설적이지 못하다.
문학이 바로 주인공의 의식이나 정신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지 교훈이나 교육과 같은 틀에 집어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괴테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괴테의 입장은 동시대 작가들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렛싱은 괴테가 시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경시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렌츠는 괴테의 소설이 자살을 교묘하게 옹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격정적인 고뇌를 표현하여 독자들을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괴테는 시민계급 출신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당시 사회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해 가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테르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지위나 도덕과 같은 것이 아니고 인간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계몽주의적인 합리성보다는 이성과 감성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통속적이었다. 괴테가 살던 당시, 소설은 막 떠오르는 장르이기는 했지만 독자 대중의 기대지평에는 미치지 못했다. 배경도 중세나 신화, 전설 등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무대는 동시대 사람들이 살고 있던 그 시절 바로 그곳이었으며, 주인공들 역시 당시의 문제로 고민하는 동시대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형성해 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