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처럼 떡볶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좋아한다. 내가 만난 떡볶이 요리사 하나는 떡볶이는 끼니가 아니라 간식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또 다른 친구의 열두 살 먹은 딸은 떡볶이를 간식이 아니라 끼니로 먹는 날을 반긴다. 야근하고 돌아온 뒤에 마시는 맥주의 안주로 떡볶이만 한 게 없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고, 초대 음식으로 떡볶이부터 떠올린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우리의 이런 폭넓은 선택이 “왜 떡볶이인가?”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된다고 믿는다. 김밥,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불고기, 된장찌개, 돈가스, 짜장면, 짬뽕 같은, 떡볶이와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다른 흔한 음식으로부터 과연 이처럼 풍요로운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끼니가 될 수 있으며 간식이나 안주가 될 수도 있다. 고민 없이 자주 먹을 수 있으면서도 특식이 될 수 있다. 사 먹을 수도 있지만 만들어서 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친숙하면서 유연한 음식이 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 p.8~9
임재석은 조리에 앞서 딱 2인분만 만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참고한 책의 레시피가 2인분 기준이라서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것을 임재석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임재석의 ‘비건 떡볶이’는 사실 상당한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식재료 소진에 목적을 두고 야채를 평소보다 많이 넣은 날이 있었고, 계량의 일부를 생략하고 고추장을 감으로 대충 넣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맛이 무너졌다.
--- p.33
심송주는 떡볶이를 정말 잘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심송주의 레시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심송주의 레시피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레시피라는 것 자체의 본질적인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레시피는 조리의 과정을 돕는 도구일 뿐이다. 똑같은 레시피로 요리한다고 해도 사용자의 습성과 환경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니 한결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 똑같은 떡볶이는 없다. 다만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특별한 떡볶이가 있을 뿐이고, 떡볶이 요리사가 내게 들려준 과거와 현재를 종합해 그 맛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 p.45
원성훈의 어머니는 일찍 성장을 멈춘 딸의 키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데, 그 원인을 어릴 적부터 떡볶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라고 진단한다. 원성훈은 반대로 떡볶이를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고 믿던 시절이 있다. 10대였을 때 그랬다. 떡볶이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무리 가운데 갑자기 키가 훌쩍 큰 친구가 있었는데, 그게 다 떡볶이를 많이 먹은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더 많이 먹었다. 떡볶이와 성장을 둘러싼 원성훈의 주장도, 어머니의 주장도 썩 논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떡볶이는 누가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떡볶이는 논리에 따라 선택하는 음식이 아니다.
--- p.75~76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부터 떡볶이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진 재능을 활용하면서다. 양현아는 어느 날 미술 시간에 쓰고 남은 고무찰흙으로 엄지손톱만 한 펭귄을 만들었다. 쌍둥이와 학원을 같이 다닌 언니가 만든 것을 둘이서 따라 해본 것인데, 친구들이 예쁘다면서 탐내자 장난삼아 50원, 100원에 팔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주문 제작으로” 그림까지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양현아는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재료비도 더 벌 수 있었다. 또 만들어서 또 팔았고 떡볶이도 또 먹었다. 결국 담임한테 들켜서 접기 전까지 몇 달간 이루어진 비즈니스다.
--- p.117
송준혁은 그날 앞치마를 두르고 ‘5만 원짜리 떡볶이’를 만들었다. 이연복과 백종원이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그 앞치마는 상태를 살펴보니 보풀이 많았다. 꽤 오래 입었다는 증거다. 내 주방 수납장 어딘가에 꽤 오래 잠들어있는 앞치마 하나가 떠올랐다. 이연복과 백종원의 프로다운 복장으로부터 이런 것을 상기할 일은 없었다. 나는 유명한 셰프보다 훌륭한 가정 요리사로부터 우리가 배우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느낀다.
--- p.151~152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다니던 중 학교 앞에 즉석 떡볶이집이 생겼다. 막 개업한 음식점치고 굉장히 허름한 데다 떡볶이 앞에 ‘즉석’이라는 말이 붙는 것부터가 생경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어느 날 친구를 따라서 가보긴 했는데, 모든 게 다 이상했다. “다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가” 이상했고, 새빨간 빛깔이 아니라 짜장에 가까운 검붉은 양념으로 떡볶이를 한다는 발상도 이상했다. 처음 먹었을 때는 그게 맛있는 것인 줄도 몰랐다. 그 이상했던 것에 그렇게 빨리 적응될 줄도 몰랐다.
--- p.177
“혹시 저만 너무 신파인가요? 그동안 떡볶이 얘기 하다가 운 사람 있어요?”
“떡볶이에 대한 기억은 전반적으로 경쾌한 것 같아요. 다들 신나서 얘기했어요. 눈물의 떡볶이는 민선 씨가 최초예요.”
“저도 떡볶이 생각하면 신나긴 해요. 그건 슬픈 기억이 아닌데,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요?”
--- p.193
박현진에 따르면 임가은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는 않지만 떡볶이는 좋아하는 애”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이 좀 났는데 나는 그런 어른을 몇 알고 있기 때문이고 사실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입맛이 같은 임가은을 붙잡고 최근 밖에서 먹었던 떡볶이를 물었더니 ‘콜떡’이라는 낯선 답을 준다. 콜떡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학원 근처에서 1,000원에 파는 컵볶이라고 말한다. “초코픽처럼” 내부가 분리된 플라스틱 컵에 나오는 것인데, 아래층에는 콜라가 있고 위층에는 떡볶이가 있다.
--- p.224
김지양에게 떡볶이는 근거리에서 찾아내 주기적으로 먹어야만 하는 음식이다. 나는 그런 김지양으로부터 “떡볶이 혈중 농도”라는 신박한 표현을 들었다. 김지양은 자신을 두고 “떡볶이 혈중 농도가 떨어지면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강한 확신을 실어 덧붙다. “저만 그런 거 아닐걸요?”
--- p.259~260
권정민은 “아마도 반조리 떡볶이를 발견한 시점부터” 분식집 및 포장마차의 떡볶이를 썩 즐기지 않게 되었다. 마트에서 종류별로 파는 ‘차가웠던 떡볶이’는 그보다 덜 자극적이면서 충분히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퀄리티 콘트롤”이 가능한 맛이다. 공장에서 왔으니까 언제 먹어도 일정한 맛이 난다.
---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