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부문의 개방을 앞두고 농촌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하려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은 작게는 몇 백만 원에서 수십, 수백 억대까지 예산이 책정된다. 그런 사업들을 단독으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마을은 별로 없다. 마을에서 그런 실무적인 업무를 도와 행정과 주민을 잇는 다리 구실을 하는 동시에 마을에 젊은 인구를 늘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만든 제도가 마을 간사 제도다. --- p.36

주위에서는 간사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도시 사람이 귀농한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인생 항로를 바꾸는 중대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외국에 이민 가는 것 이상의 사건일 수도 있다. ……힘이 들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농촌 주민의 처지에서는 귀농인이 오면 처음에는 도움도 주고 정을 나누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보따리를 싸서 돌아가는 뒷모습에 실망과 허탈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간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진안군에서 처음 시작하는 제도이므로 진안 군민은 물론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 p.66

농산물 마케팅이란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건강에 도움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 농산물을 건강에 접목한 뒤, 문화와 연결한 다음 농산물에 역사성을 연계시키는 마케팅 전략이 한국 농업이 나아갈 길이라고 믿는다. --- p.188

나는 도시의 직장인이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농촌에서 보냈고, 퇴직 후 진안군의 마을 간사로 1년, 사업단장으로 2년을 지냈다. 그 결과 도시와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어려움은 떼어놓고 보면 해결 불가능한 일 같다. 그러나 한자리에 올려놓고 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 p.194

나는 계속 서서 농민을 지켜보았다. 비를 맞아가면서 경운기에 고추를 싣고 돌아가는 농민의 처진 어깨를……. 전북동부권 고추주식회사의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나는 보았다. 한 시간만 서 있으면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만 같은 더운 여름에 고추 한 개라도 더 건지려고 밭에 나가 죽을힘을 다해 고추를 따서 시장에 갖고 나왔다. 시장에 고추를 팔러 나온 농민이 그 고추를 다시 경운기에 싣고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추 재배 농민은 고추를 밭에서 따놓기만 하고, 운반, 가공, 판매는 전북동부권 고추주식회사의 몫이 되어야 한다.

<b>무진장에서 무진장 많은 일을 한 대기업 임원 출신 농업 CEO</b><br/><br/>무진장이라는 곳이 있다. 산이 무진장 높고 깊으며, 눈도 무진장 많이 오고, 무진장 살기 좋은 곳이다.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를 합쳐 부르는 말인데, 특히 진안은 평균 해발 300미터가 넘는 고원에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으며, 서울보다 넓은 면적에 인구가 3만 명뿐인 산골 오지의 대명사다. 활력을 잃고 사람이 줄어드는 이곳에서, 그런 막막한 현실을 타개해보려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2006년에 마을 간사 제도를 시작했다.<br/><br/>마을 간사 제도는 귀농을 원하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일자리를 주고 숙소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마을 간사는 지역에 맞는 특화 사업을 개발하고 컨설팅, 홍보 등 농촌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도맡는 사람이다. 그냥 귀농하는 게 아니라, 잘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촌 사람들과 무언가 일을 해야 하는 무척 힘든 자리다.<br/><br/>이 책 『무진장의 농업 CEO ― 잘 사는 농촌을 만드는 마을 간사 이야기』는 희망제작소와 유한킴벌리가 함께하는 ‘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의 12번째 이야기로, 마을 간사를 전국에서 처음 시작했고 또한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진안군의 마을 간사 노정기의 일기를 책으로 다듬어 엮은 것이다. <br/> <br/><b>잘 사는 농촌을 위해 본색을 드러내는 CEO의 본능 </b><br/><br/>노정기는 진안군 백운면 동창 마을의 마을 간사다. 100만 평이 넘는 설록차밭을 경영한 경험을 지닌 노정기는 어느 날 갑자기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진안군의 마을 간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백운 나들목 체험관을 운영하고, 도시에 나가 특산물 판매행사를 진행하고, 메주 체험방을 만드는가 하더니, 숨어 있는 매력을 찾아 진안골을 순례하면서 서서히 진안 사람이 되어간다.<br/><br/>알아두면 좋은 판매행사 9계명과 체험관 운영 규약을 만들고, 다문화 가정의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우리말을 가르치고, 산골 마을의 심부름꾼으로서 귀농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농촌의 미래를 그리며 서울에 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호사를 누리며 즐겁게 살아가던 어느 날, CEO의 사업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한다.<br/><br/>재수 끝에 농림부가 지원하는 200원 원 규모의 원예작물 브랜드 육성사업 브랜드 육성사업에 선정되고, 진안군과 임실군이 연합해 만든 전북동부권 고추연합사업단장에 취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노정기는 사업단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면서 설록차 사업을 통해 경험한 농업 마케팅 전략과 농업인에게 필요한 법률, 마을 간사 생활을 하면서 연구한 마을경영 전략에 관한 강의 활동도 하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설록차 농업을 경영한 경험을 농촌에 접목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안도 계속 연구 중이다. <br/> <br/><b>실업 극복과 잘 사는 농촌 ― 마을 간사는, 농촌 마을 CEO다 </b><br/><br/>먼저 도시와 농촌의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고, 도농 지역 지자체에 진안군의 마을 간사 제도를 확대해 1500명 정도의 마을 간사를 채용하며, 실업 극복과 고령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에 도시 은퇴자의 보람 있는 일터를 만드는 한편 제도적으로는 귀농지원조례를 제정해 잘 사는 농촌을 만들자는 것이 이 책을 쓴 진안군 백운면 동창 마을의 마을 간사이자 전북동부권 고추연합사업단장 노정기의 주장이다. <br/><br/>마을 간사 노정기는 이제, 농촌 마을 CE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