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네 살 때,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 문득 보니 딸아이가 이모가 시킨다고 장난감을 치우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왜 이모 말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엄마 말은 안 들어?”라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니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게 되어 있지만, 이모는 아니잖아.” 즉 아이는 이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신경 썼지만, 엄마의 사랑은 받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니까, 엄마는 그냥 사랑하니까. -p. 13
그렇다고 이 엄마들이 완벽하고 항상 아이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유아와 안정애착을 형성하려면 함께하는 시간의 40퍼센트만 유아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해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p. 31
감정은 정보의 근원이 되어야지, 위협이나 자신을 압도하는 무엇이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났음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나를 화나게 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친구랑 얘기하다가 그랬다면, 친구가 한 어떤 말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을 수 있다. 당신이 슬픔, 행복, 분노, 두려움 등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당신은 항상성의 상태에서 이탈해 흥분 혹은 통제곤란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 상태가 행복이나 기쁨이라면, 좋은 것이니 애써 가라앉히고 항상성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서두르지 않았도 된다. 하지만 이 통제곤란 상태가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결국 우리는 모두 기준점, 즉 감정의 휴식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신경계는 어느 쪽이든 극단의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p. 37
대부분의 경우, 양가애착 유형인 사람은 타인에 의존해 감정을 조절하려고 끊임없이 친구나 애인을 불러내서 ‘얘기 좀 하자’고 하지만, 타인의 말에서 찾은 위안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이들은 감정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자기 감정이 너무 강렬하고 무서워서 직접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회피애착 유형인 사람은 자기를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내 환자 중에 한 명은 감정이 너무 강렬해지면, ‘모두 차단해버린다’고 말하곤 했다. 즉 몸과 머리를 따로 떼어내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일에 아주 능숙해서, 처음 만났을 때 마치 머리가 걸어 들어오고 몸은 뒤따라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릴 때는 다른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이런 대처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p. 42
종합하자면, 런던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피터 포나기 박사의 정의처럼, 안정애착의 본질은 자기가 느끼는 것, 즉 내적 경험을 인지하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p. 45
그런데 위협을 받으면 해마가 오작동해서 사건이 조각조각 분해된 채로 기억된다. 사건의 어떤 부분은 의식적인 기억, 이른바 외현기억에 저장되고, 어떤 부분은 무의식적 기억, 이른바 암묵기억에 저장된다. 이것은 왜 우리가 과거의 특정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혹은 반대로 과거의 무서웠던 경험을 마치 요리법 외우듯이 술술 말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해마가 더 작고 편도체는 평균보다 크다. -p. 72
암묵기억이 어른이 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냄새, 표정, 색깔, 소리 등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떠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묵기억을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기억으로 인지되지 않고 이유도 모르는 책 반응하게 된다. 만약 엄마가 커피를 끓이면서 파란 주걱 같은 것으로 당신을 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면, 파란색 혹은 커피 향이 두려운 느낌을 일깨워서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은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손바닥이 땀에 젖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은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신체가 투쟁-도피 상태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p. 82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이 그 일에 비해 과도하게 나타날 때, 그것은 대개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촉발되었음을 의미한다. 트리나는 자기 몸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암묵기억을 외현기억으로 바꾸어놓음으로써 기억을 통합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앞으로 다시는 격하게 반응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 또 그런 상황이 오면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무작정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p. 87
연구에 따르면 십대들에게 무표정한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부정적이고 화난 표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십대가 무덤덤한 엄마 얼굴을 보고는 더 예민하게 반응해서, “엄마는 만날 나한테 화만 내잖아요!”라고 하는 거다. -p. 96
회피애착형 성인에게는 거의 모든 일이 ‘별일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은 자기 감정이나 기분이 어떤지 모르고 지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감정이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감정을 깊숙이 묻어두는 데 능숙할 뿐이다. 회피애착형 사람들은 신경계를 평정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갈등을 피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모든 갈등을 완벽히 회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감정은 언젠가 어떻게든 표출되게 마련이고, 대개 그런 일은 의외의 상황에서 발생해 더 큰 곤란을 야기할 수 있다.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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