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에 혼자 남겨지겠지만, 가스실 밖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흉한 꼴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의미가 없겠지.
그는 중앙에 있는 유리창 너머로 친구인 포니와 윌을 보았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그는 메리를 찾았다. 그러나 그 젊은 여인은 12년 전 카릴을 체포했던 경찰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부탁으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끔찍한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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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형집행일이 한 주 남았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카릴은 미소를 띠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헛된 희망도 없지만 절망하지도 않아요. 당당히 가스실로 걸어가 차분히 죽음을 맞을 거예요. 더 이상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로 고통스러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가 어렸다.
“지금 가장 바라는 일이 뭐죠?”
“앞으로 살아 있는 한 주 동안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거예요.”
잠시 침묵한 후 그가 덧붙였다.
“그것 말고 내가 바랄 일이 달리 있을까요?”
--- p. 114
나와 가스통은 빈민가를 순회했다. 먼저 밤새 신음하던 시비아를 찾았다. 시비아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그녀는 큰딸에게 골목에 사는 늙은 힌두교인 집에 가서 차를 두 잔 가져오라고 한 다음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어둠침침한 집안에는 작은 아이가 누더기를 기워 만든 매트에 누워 있었다. 뼈만 앙상한 몸에 파리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가스통이 진통제를 놓아주자 아이는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며 미소지었다. 그토록 심한 고통 속에서 어찌 저렇듯 밝은 웃음을 지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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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쓰기 위해 빈민가의 실상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빈민가에 있는 가스통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우리는 도시 중심에 있는 극장 앞에서 만났다. 그 빌딩은 소란스러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반 루피로 뱃속을 뒤트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가스통과 나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가 파리가 다닥다닥 붙은 백열전구 아래 마주앉았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식당 안에는 노동자들이 가득했다. 낡아빠진 선풍기가 코를 찌르는 냄새들을 힘겹게 휘젓고 있었다.
식당주인이 가스통에게 말했다.
“1루피면 세상에 있는 온갖 종류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죠.”
--- p. 40
마누엘은 대부분의 소년들처럼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야생 황소의 뿔에 맞서는 스페인식 용기와 죽음을 택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견습투우사 꾸러미를 메고 거리를 떠돌며 어린 황소들을 다루는 기술을 배울 기회를 찾았다. 걸어서, 트럭 뒤에 매달려서, 혹은 열차 사이에 매달려서, 스페인을 가로지르면 농장가 농장, 도시와 도시를 배회했고, 잠은 들판이든 기차역이든 공사판이든 발길이 멈추는 곳에서 잤다. 끼니는 훔친 과일이나 곡물, 도토리, 버린 음식으로 때웠다.
--- p. 194
그는 반데리야스 끝을 둘로 쪼개 가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황소가 기다리고 잇는 곳으로 달려가 몇 미터 앞에 멈췄다. 관중석에서 공포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코르도브스가 모래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투우사가 반으로 쪼갠 반데리야스를 땅에 꽂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소가 약간만이라도 진로를 바꾸면 뿔이 그의 눈이나 입을 찌를 수도 있고, 머리를 부술 수도, 폐를 찌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 의사도 투우사를 살릴 수 없었다.
--- p. 201
코르도브스의 이러한 용기는 늘 대가를 요구했다. 그의 몸에는 15센티미터나 되는 흉터가 네 개나 있었다. 스페인과 프랑스, 남아메리카의 의사들은 그에게 피를 20리터나 수혈해야만 했으며,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마드리드에서는 네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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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번의 광란의 경기가 끝난 어느 날 밤, 코르도브스는 공포에 질려 잠이 깼다. 악몽이었다. 수많은 검은 황소들이 오른쪽 배를 뿔로 마구 찔러댔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상처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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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들어오는 자, 그 어떤 희망도 포기하라.’이것은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 입구에 새겨져 있던 말이다. 하지만 세인트 틴의 사형수 대기감방은 단테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죽기 전에 필사적으로 생에 집착하는 그 짧은 시기에 죄수들은 극도의 불안감으로 깊은 마음의 병을 앓았다. 그는 이 도살장에서 4,341일을 보냈다.
--- p. 99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황산접시에 청산가리가 떨어져 부글부글 끓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조금이나마 범죄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즉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이 사형당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해요. 그들이 마구 쏘아대는 권총과 아스팔트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자동차, 주먹질, 교도소, 감방과 철창, 연푸른색 사형실이 뒤엉킨 하나의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요.”
--- p. 136
‘나는 최선을 다해 세상에 이렇듯 고통스러운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습니다. 사형수 감방에 있는 죄수들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거기서 보내다가 결국 나와 같은 방법으로 죽겠죠. 하지만 나는 문명세계의 수치인 이 가식적이고 계힉적인 살인행위에 반대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아쉽게도 성과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 p.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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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방 하나에 열 명 내지 열두 명이 생활했고, 그렇게 6백 명의 나병환자들이 격리된 채 살고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과 발이 뭉개진 그들의 곪은 상처엔 파리가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 처참한 모습도 악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코올 향신료가 뒤섞인 그곳 공기는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인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가장 천한 곳과 가장 고귀한 것이 공존했다. 쓰레기와 배설물 한가운데서도 아이들은 구슬치기를 하며 즐겁게 뛰놀았다.
--- p. 24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느냐고? 결핵과 나병, 이질이 파다하고 영양실조로 평균수명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곳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이들에게는 당장 약국과 병원이 필요했다. 또 구루병에 걸린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했다. 우물과 화장실이 필요했고, 결핵균을 퍼뜨리는 소와 버팔로도 없애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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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제3세계가 아니라, 마치 사자와 코끼리가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밀림 속 별 아래 혹은 중국 대포를 마주한 논처럼 위험한 곳에서 자는 기분이었다. 오, 하지만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이곳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일이면 다시 안락한 잠자리로 돌아갈 내가 감히 말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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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나는 크게 낙담했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미소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었다. 그래서 그 미소 띤 얼굴들을 보고 그들이 자신들의 불행을 극복했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 빈민가는 분명 저주받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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