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립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헌법정책론의 이론적 기초」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법학첫걸음』『헌법강의』『헌법소송법』『교회법의 이해』『헌법재판 이야기』『법원 이야기』『우리 헌법 이야기』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의원입법의 문제점」「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연구」「헌법개정의 절차와 헌법개정의 가능성」등이 있다.
헌법이 새 법이 아닌 ‘헌-법’인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제도가 그렇듯 헌법이 완벽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설사 완벽한 내용으로 만들었다 해도 시대가 바뀌면 사회현상이 변하고 국민의 의식과 틈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헌법을 자주 바꿀 수는 없다. 너무 자주 바꾸면 또 바뀔 것이라 생각하여 사람들이 헌법을 지키지 않게 된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시대와 맞지 않게 되고, 또 너무 자주 개정하면 규범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개헌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pp.9~10
세계 헌법사에서 미국 헌법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으로서 영국의 헌정 경험과 계몽주의 사상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된 민주적인 통치 질서를 하나의 헌법에 정리해 실현시킨 것이다. 미국 헌법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국 헌법의 모범이 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선구적일 뿐 아니라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효력을 가지며 모범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 연방제 국가로서의 한계 때문에 사실상 노예제를 용인했다거나 정당과 매스컴의 발달로 직선제처럼 운영되는 대통령 간선제 등은 미국 연방헌법의 한계이기도 하다. ---p.34
우리 역사에는 ‘머리 좋고 아부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개헌안 표결을 기명 투표 방식으로 먼저 바꾸자는 안이 나왔다. 기명 투표 방식이라면 개인적으로 아무리 싫어도 반대표를 던지기 어려웠다. 선거와 관련해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6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해 무기명 투표가 기명 투표로 바뀌었고, 6월 15일 재적 218, 출석 211, 찬성 208, 반대 3으로 통과되었다. 물론 이때의 자유당 의원들이 개헌 이후 7월 29일 실시된 총선에서 다시 대거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하였고, 이는 5·16군사정변의 빌미가 되었다.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역시 국민의 손에 달려 있고, 결국 혁명은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pp.66~67
6월 민주항쟁은 서구의 시민혁명을 연상케 한다. 물론 4·19혁명도 시민혁명으로 불리지만 기존의 주도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미완으로 끝났다. 하지만 6월 민주항쟁은 군부 출신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을 대체할 민주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성공한 시민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개헌의 차원에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 정상적이고 평화적인 상황 하에서 최초로 여야 합의의 국회발의로 개헌된 헌법이다. 국회에서 발의된 개헌안이 몇 번 있었지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제헌헌법의 경우, 대통령(정부)이 없으니 당연히 국회안이었다. 그리고 1960년 헌법의 경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임시내각이 구성된 상태이므로 대통령이 발의할 상황이 아니었다. 부칙만 개정한 4차 개헌의 경우, 격렬한 시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원내각제(이원정부제)였으므로 의회발의가 당연해 보인다. 그 이후에는 현행 헌법이 유일한 국회발의 개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