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서 손을 뒤로 돌려. 장난치는 줄 아나 본데. 정확히 삼 초의 여유를 줄 테니 시키는 대로 해.” “일 분으로 하면 안 될까? 아가씨를 바라보는 게 좋아서 말야.” “돌아서. 어서!” “당신 목소리도 마음에 드는데.” “좋아,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지.” “숙녀분이 그런 말을 쓰면 쓰나.”
내가 아는 거라고는 뭔가 보이는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과, 늙어서 녹슬긴 했어도 항상 믿을 만한 육감에 따르면, 패가 돌아가는 대로 게임했다가는 엄한 사람이 엄청 판돈을 잃게 될 거라는 것이지. 그게 내가 상관할 일인가? 아니 내가 상관할 일이라는 게 뭐지? 내가 알기는 아는 걸까? 알았던 적이라도 있었나? 그것까지는 따지지 말자고. 오늘밤 인간적이지 않으니까, 말로. 아마 한 번도 인간적인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지 몰라. 어쩌면 난 사립탐정 면허증을 가진 허깨비인지도 몰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는지도 모르지. 항상 잘못된 일들만 일어나고 결국 바로잡을 수도 없는 이 춥고 반쯤 불이 켜진 세상에서는.
“난 경찰에 신고했소.” “그렇지만 그 자리에 붙어 있진 않았지?” “클라우센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없었소.” “그렇지만 그 자리에 붙어 있진 않았군.” “맞는 말이요.” “베이시티에서는 그 이유만으로도 당신을 죽여버릴 수 있었어.” “베이시티에서는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날 죽일 수 있었겠지.” “그 이유만으로 당신을 영업정지시킬 수 있었어.” “영업정지시키는 걸 고려해보시지. 어쨌거나 난 이 직업을 좋아한 적이 없었거든.”
어느 여름날, 캔자스 출신의 시골 아가씨 오파메이 퀘스트가 말로의 사무실을 찾아와 자신의 오빠 오린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세상사에 닳고달은 자신 앞에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내숭을 떠는 오파메이가 귀여워서였을까, 정말 너무나 심심해서였을까, 말로는 코묻은 돈 20달러에 이 묘한 수사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말로가 단순히 실종자 행방 찾기라고 생각하고 어슬렁어슬렁 베이시티의 싸구려 하숙집을 찾아갔던 상황은, 진 향기에 은은히 섞여 떠도는 마약 냄새와 피 한 방울 안 나게 얼음 송곳을 놀리는 전문 킬러의 발자취가 개입되면서 수수께끼 같은 범죄로 변해간다.
뒤이어 정체불명의 사내가 말로에게 모종의 물건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해온다. 약속장소로 찾아간 말로는 다시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를 마주하고, 얼굴을 가린 미모의 여성에게 얻어맞고 쓰러진다. 누군가가 뭔가를 그 방 안에서 찾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말로가 발견한 것은 한 쌍의 남녀가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진.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그는 갱단과 영화계의 검은 뒷모습과 마약상들의 커넥션에 점점 깊이 개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