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예술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뉴질랜드 Westpac School Music Competition 오클랜드 지역 및 전국 우승을 차지했다. TV 프로그램 Asia Dynamic에 출연했다. Bay of Island Festival 초청 콘서트를 열었다. 뉴질랜드 Kristin School을 졸업했다. 뉴질랜드 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을 중퇴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외항사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온 이후로는 네덜란드어 공부와 함께 동네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가정 피아노 콘서트를 열고 있다. KLM 네덜란드항공 공식 블로그 『키미’S 유럽 다이어리』(http://blog.naver.com/flyklm)에 네덜란드통신원 다이어리를 연재 중이다. 단편 『승무원의 첫사랑』,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마더북스, 2011, 전자책, 북씨 제작), 장편 로맨스 『공증그녀』(마더북스)를 펴냈다.
미스터 킴이 퇴원하는 날, 로비의 손을 잡으며 그가 말했다. “아버지가 그 동안 고마우셨대요.” 로비가 아무 말 없이 지연을 바라보자 그녀가 덧붙였다. “매 주말마다 아버지 보러 오셨잖아요.” “뭘요.” 기분이 좋지 않은 로비가 짧게 대답하고 나자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미스터 킴이 웃으며 지연에게 무언가를 묻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미스터 킴이 한 말을 그녀는 통역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욱 궁금해진 로비가 지연을 추궁했다. 로비와 아버지 양쪽에서 말하라는 성화에 못 이겨 그녀가 여전히 빨간 얼굴을 숙이고 들릴까 말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버지가 그 동안 자기 때문에 온 거 맞냐고. 데이트 하러 온 거 아니냐고.” 로비의 얼굴도 목까지 빨개졌다. 토마토 같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미스터 킴이 껄껄 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의 손을 잡고 말하셨다. “로비랑 캐나다 가게 되면 두 사람이 서로 잘 보살펴라.” 그 때는 로비가 청혼을 하기도 전이어서 얼굴이 붉어진 나는 “아빠는 무슨, 우리가 결혼이나 할 것처럼 그래”하고 살짝 항의했다. 아빠는 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니까 로비는 된 사람이다. 내가 택시 운전하면서 시내 바에서 술 먹고 한국여자들이랑 노닥거리는 외국남자들을 한 두 명 본 게 아니야. 그런데 그 사람은 항상 바닷가에 와서 책 읽고 그런 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보니 보통 심지가 곧은 남자가 아니다. 캐나다 가면 네가 따뜻하게 잘 돌아주어야 해.”
바다에 가니 예전 로비와 연애하던 기억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로비와 아버지가 자주 가던 바닷가가 나에게는 여기서 가장 그리운 곳이다. 어쩌면 바닷가보다도 그 때의 나와 로비가 나는 더 그립다. 그래도 그 때의 추억을 생각하니 그렇게 행복으로 충만했던 그와 내가 이렇게 쉽게 끝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이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 마음이 진실이 아닐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