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하지 않은 세상일을 하느님에게 떼쓰다”
하느님은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그간 여느 인간들처럼 근면하게 일해서 연금 수령에 필요한 기간만큼 불입금도 적립했으므로, 근사한 아파트에서 여유 있는 퇴직자 생활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한눈팔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성실한 일꾼들이 흔히 그렇듯이, 일을 하다가 쉬게 된 하느님은 곧 따분해졌고, 함께 퇴직생활을 보내는 베드로와 즐기던 막대던지기의 일종인 미카도 놀이에도 싫증을 내기 시작하셨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만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하느님은 곧 당신이 힘들여 창조한 세상에서 인간들이 너무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일단 질투심에 사로잡히면 이성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법. 질투는 이내 하느님의 힘이자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덜 행복하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을 고되게 만들까?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할 때만큼이나 비상한 창조성을 발휘하여, 마침내 매일 매일이 일요일이었던 지상낙원에 월요일이 생겨났고, 모든 것이 풍요롭고 여유로웠던 젊음을 누릴 것 같던 에덴동산에 노화가 생겨났으며, 평생 사랑만 하며 살 것 같았던 아름다운 연인들에게 지루한 일상이 생겨났다. 가히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발명 때문에 지상낙원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한다.
그러고 보니, 시큼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더미에 새카맣게 몰려드는 파리 떼, 여름이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떼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도대체 백해무익한 못된 녀석들을 왜 만드셨을까 하는 투정 아닌 투정을 어른이 된 지금도 문득 문득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낙원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그 발명품들이란 사실 우리 인간들이 지구상에 출현해서 살아오는 동안 끊임없이 키워온 욕심과 오만이 빚어낸 추악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뿔났다》는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인간의 책임, 너무도 무거운 나머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책임을 하느님에게라도 슬쩍 떠넘기고 싶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느님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그 누가 감히 그토록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인정하기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고 깨면 항상 지구촌 어디에선가 끔찍한 사건이 터져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며, 자원 고갈, 이상기후, 환경 파괴 등 날로 생활이 팍팍해져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산다. 생활이 힘들어질수록, 심신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한편으로는 ‘너 때문이다’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 대상을 찾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이렇듯, 장 루이 푸르니에의 《하느님이 뿔났다》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일을 ‘결자해지’ 차원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좀 해보시라는 ‘떼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전작 《하느님이 이력서》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었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면, 그 후편에 해당되는 이 책은 순탄하게 굴러가지 않는 세상일에 대한 인간의 섭섭하고 두려운 심정을 고백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자선은 끝났으니 이제 돈을 내시오.”
낙원에서는 돈이 필요 없었다. 입장은 무료였으며, 과일과 채소는 모두 공짜였다. 돈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하느님이셨으며, 이는 오로지 인간을 괴롭히겠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느님은 베드로 성자에게 종이 한 장과 색연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정성껏 자신의 이미지를 본 딴 최초의 지폐를 그렸다.
완성되자 하느님은 베드로 성자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 지폐를 흔들었다.
“자, 이걸 잘 보게. 이걸로 세상을 쑥대밭을 만드는 거야.” 하느님은 덧붙였다.
“앞으로 인간들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돈벌이에만 전념해야 할 테니까.”
--- p.71, 〈최초의 지폐를 그리시다〉 중에서
하느님은 인간들이 밤새도록 잔치를 벌이는 통에 제대로 주무실 수가 없었다.
“난 저자들의 머리에 똥칠을 해놓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느님이 베드로 성자에게 말했다.
“저들을 용서하시죠.”
“저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어림없는 소리, 저자들은 예전에도 그런 소리를 써먹은 적이 있어, 나도 그런 것쯤은 다 안다고. 걱정 말게, 난 내가 직접 그 일을 할 마음은 없으니까. 남한테 위임할 작정이네. 그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맡길 거라니까.”
“그 일이라니,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하루 종일 똥 싸는 일.”
“어디에다요?”
“도처에. 나는 인간들이 애지중지하는 자동차, 집, 온 땅을 다 더럽힐 걸세.”
“주님의 집인 교회당들도 더럽히실 건가요?”
하느님은 이렇게 해서 비둘기를 만드셨다.
--- p.120, 〈인간들의 머리에 똥칠을 하시다〉 중에서
“오늘은 세상의 종말을 만들려고 하네.” 하느님이 말했다.
“벌써?” 베드로 성자는 약간 실망한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아니라 저들에게 해당되는 말일세.”
하느님은 아래 방향으로 향한 손가락으로 저들이란 아래층 이웃들을 의미함을 상기시켰다.
“아, 그렇군요. 그건 엄청난 작업이겠네요, 시간이 꽤 걸리겠어요.”
“뭐, 꼭 그렇지도 않다네, 저자들이 나를 도와줄 걸세.”
“확실해요?”
“저자들은 벌써 육지와 바다를 망가뜨렸고, 이제는 하늘을 공격 중이지. 자네는 저들이 공격을 멈출 거라고 생각하나?”
“어쩌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네는 저자들을 너무 믿는군. 어쨌거나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 난 별똥부대도 준비해두었네.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두 명의 날강도들이지. 그 두 사람만 있다면,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라네. 두 사람은 세계의 종말을 멋지게 조직할 수 있거든. 어쩌면 벌써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네.”
“그 두 날강도는 도대체 누구죠?”
“빈 라덴과 조지 W. 부시.”
--- p.195, 〈세계의 종말을 조직할 두 명의 날강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