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예학의 근본이 된 『가례家禮』에는, 중월仲月(음력 2, 5, 8, 11월)에 사당에서 고조高祖까지 4대 조상에게 지내는 사시제四時祭, 동지에 시조始祖를 잇는 종자宗子(종가宗家의 맏아들)가 시조에게 지내는 초조제初祖祭, 입춘에 고조 이상을 잇는 종자가 각각의 선조(초조 이하 고조 이상의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선조제先祖祭, 계추季秋(음력 9월)에 아버지를 잇는 종자가 아버지에게 제사 지내는 녜제?祭(예제, 니제, 이제), 돌아가신 날 모시는 기일제忌日祭, 삼월 상순에 지내는 묘제墓祭 등 여섯 가지의 집안제사가 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주된 이념이었으므로 제사도 명복을 비는 재齋의 형식으로 절에서 지냈다.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고려 말부터 사대부를 중심으로 유교적 제사가 점차 보급되었으며, 1474년 조선 성종 때 강희맹, 신숙주 등이 편찬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대부사서인大夫士庶人의 제사로 4중월의 시향 그리고 기일과 속절의 제사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가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주자예학을 널리 보급하고자 우리나라의 풍속을 가미한 예서들이 편찬되었다.
명종 5년인 1550년 회재晦齋가 가정의 제사에 대해 저술한 『봉선잡의奉先雜儀』는 중월의 사시제, 녜제, 기일제와 당시의 풍속을 좇아 설, 한식, 단오와 추석에 지내도 좋다고 한 묘제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이어 선조 10년인 1577년 율곡栗谷이 편찬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사시제, 기제와 설, 한식, 단오 및 추석에 지내는 묘제에 대한 서술이 있다. 또 1648년 간행된 『상례비요喪禮備要』에는 중월의 시제, 기제 그리고 묘제가 설명되어 있고, ‘우리나라 예학禮學의 종장宗長’이라 일컫는 사계沙溪가 『가례』를 증보, 해설하여 예설을 집대성한 『가례집람』은 1685년(숙종 11)에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사계는 『가례』를 따라 사시제, 초조제, 선조제, 녜제, 기일제와 묘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700년대 초에 편찬되어 1844년 간행된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예서인데, 사시제를 가장 중요한 제사로 다루었고, 녜제, 기제 및 삼월 상순의 봉사친奉祀親(친미진조親未盡祖, 현재 제사를 모시고 있는 친속親屬)에 대한 묘제와 시월 초하루의 친진조親盡祖(제사 모시는 대수가 다한 선조)에 대한 묘제가 설명되어 있다. 1922년 간행된 『사례집의四禮集儀』에는 사시제, 녜제, 기제 및 삼월 상순과 시월 초하루의 묘제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서들은 사시제를 가장 비중 있는 제사로 강조하였지만, 『성호전집星湖全集』에 실려 있는, 이익李瀷이 1700년대 중반에 쓴 것으로 보이는 ‘제식祭式’의 머리글에서, “지금의 풍속은 사시四時의 정제正祭를 거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므로 단지 기제, 묘제, 참례의 세 조목만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고 한 것처럼 이미 이 시기에 묘제를 중시하는 풍속으로 인해 묘제가 사시제를 대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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