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냉정해졌다. 나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그래 맞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다.’ 정직하게 나를 인정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겸허해졌다. ‘그래,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노력을 다한 뒤에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다 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 p.27~28
“선, 초등학교 때 기억하나요? 외야로 공이 굴러오면 공을 잡아서 홈 쪽으로 던지던, 가장 편안하던 그 기본자세 말입니다. 그 스텝으로 던지던 그 폼 말입니다.”
그 순간 깨달음이 밀려왔다. 다시 한번 잊고 있었던 기본기가 되살아났다. 그렇다. 결국은 기본이었다. 밸런스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체의 밸런스, 상하체의 밸런스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 p.30
나는 과분하게 국보 투수라는 호칭으로 종종 불리곤 했다. 늘 선후배들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혼자 있으면 슬그머니 그 칭호를 어디 한구석에 가둬 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허공에 대고 조용히 혼자 독백하곤 했다. ‘나는 국보 투수가 아니다.’라고. 그렇게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 p.78
“휴학계를 당장 철회해라. 정 군대에 가고 싶으면 (남은 두 학기 반) 대학을 마치고 그때 군대에 가라.”
지금으로서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때 이미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야구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안기부의 말 한마디에 겁먹지 않을 이, 누가 있었겠는가. 두려웠다. 어린 나이에 무서웠다. 휴학계를 철회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안기부가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당시 계획은 3년간 군 복무를 마친 다음, 메이저리그에 2년 먼저 입성하는 것이었다. 계획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좌절이었다. 내 야구 인생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안기부라는 국가 폭력의 개입 속에 왜곡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의 강력한 의지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 p.113~114
승리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자 스포츠 세계의 궁극적 목표다. 물론 과정은 중요하다. 실패도 노력만큼 아름답다. 경기 자체가 주는 흥분과 감동 또한 중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프로 선수라면 강렬한 승부 근성, 우승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솔직했다. 때론 무리도 있었고, 승부를 즐기다 보니 냉정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의 세계는 경쟁의 세계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나를 이기는 승부를 통해 승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 또한 나의 원칙 중의 원칙이다.
--- p.197
‘스타 선수는 좋은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논리가 국정감사에서 화두가 된 적도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바른 명제는 이래야 한다. ‘스타 선수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비스타 선수도 좋은 지도자가 안 될 수도 있고, 될 수도 있다.’
--- p.284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내 나름의 작은 가치관인데, ‘잘하는 선수는 그냥 놔두면 된다. 못하는 선수에게는 좀 더 따뜻해야 한다. 좀 더 다가서야 한다. 좀 더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았지만, 이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실천하려 했다.
--- p.286
지금도 곰곰이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야구를 하게 됐을까. 어떻게 해서 야구는 내 평생의 운명이 되었을까. 야구는 형이 내게 남긴 유산일 것이다. 형이 자신의 몫까지 뛰어 달라고 남기고 떠난 유언일 것이다. 어쩌면 형은 지금도 나와 함께 녹색 그라운드를 함께 뛰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형을 생각하며, 슬픔을 달래 가면서 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 인격과 온 생애를 내게 헌신하셨을 것이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토록 내게 야구는 운명이었고, 이제 한 생애가 되어 간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야구 인생은 오늘 이 시간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 p.305
공모는 전혀 없었다. 그냥 문제의식 없는 예전 관행의 되풀이였다. 그렇다면 당장 누군가는 항변할 것이다. 늘 그래 왔기 때문에 당신도 그랬냐고. 그건 아니다. 그래서 잘못했고, 그래서 사과드렸고, 그래서 사퇴했던 것이다. 나는 늘 야구장에 갇혀 있었고, 야구장 밖 세상에 어두웠다. 야구인들끼리, 그것도 프로야구인들끼리만 만나고 대화하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야구장 밖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는지 지극히 둔감했다. 야구로 치면 경기의 흐름을 뒤바꿔 버린 치명적 실책이었다. 프로야구는, 더구나 국가대표는 늘 국민과 함께해야 했고 시대적 흐름과 함께 갔어야 했다.
--- p.313
나는 야구를 모른다. 잘 모르겠다. 전 메이저리그 투수 호아킨 안두하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한 가지 있다. “야구는 희생의 스포츠”라는 것. 이는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의 희생번트로, 누군가의 희생플라이로 나는 한 루, 한 루를 진루해 이제 한국 나이로 곧 환갑을 맞이한다. 나는 홈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많다. 하지만 나를 위해 조용히 희생번트나 희생플라이를 날렸던 이들은 채 1루를 밟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