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철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철학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보여주기 위해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진리를 사랑하며 살았던 철학자의 삶에 최대한 접근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철학이 무엇이며 철학자란 누구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철학적이라고 여기는 철학자를 한 명 선택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극히 철학적인 철학자는 여럿 있지만, 아무래도 서구 사회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단연 돋보인다. 그는 늘 철학하는 삶을 살았고 결국 철학적인 죽음을 맞았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를 가만히 보면 철학이 보인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며 철학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 --- p.8
소크라테스의 본격적인 변론은 과연 누가 자신을 고발하였는가를 밝히는 일로 시작한다. 법정에 소환됐다면 분명 고소인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테네의 평범한 정치인으로 아니토스(Anytos)와 멜레토스(Meletos), 리콘(Lykon)이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소크라테스를 아테네 법정으로 출두시킨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이들보다 먼저 자신을 고발한 최초의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소크라테스는 직접 자신을 고소한 아니토스와 그 일행보다 그 최초의 고발자야말로 더 두려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들은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고발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 p.27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진리에 대한 사랑’이란 표현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 태어나 자라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으며 지금도 자신 앞에 있는 아테네인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그가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아테네인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아테네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스승으로서 아테네인이 신의 길에서 더 멀어지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록 아테네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할지라도,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라도 말이다. --- p.54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모든 사람의 견해를 존중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어떤 견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어떤 견해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사람의 견해를 존중해야 할까?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다수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고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있다면 그의 견해를 따르고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당연히 우리는 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있다면 그의 견해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가령 남태평양으로 배를 타고 가는데 경험이 많은 전문 항해사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아무 지식도 없는 여행객의 주장을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