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지하터미널을 벗어나자 이른 아침 낮은 햇살들이 차창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환할 정도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혼자만의 여행이라 커튼으로 창밖 풍경의 재미를 가리고 싶진 않았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의 가벼운 진동이 출발선에 선 달리기선수의 요동치는 심장처럼 탈주의 순간을 예고하며 떠나는 자의 설렘을 더 깊게 했다. 홀로 여행한다는 것. 이는 때론 주변의 사소한 현상과 사물에도 평소와는 다른 감성을 갖게 한다. 멀미유발자로 취급되는 버스의 불편한 진동도 홀로 여행에서는 이런 느낌을 안겨줄 때가 있구나. 세 살배기 딸과 함께했던 즐거운 여행의 악전고투 속에서 나는 그것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전날 밤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딸과 아내에게 횡설수설 핑계를 대며 슬며시 문을 나섰던 진짜 이유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 여행, 그 첫 여정에서 내가 벅차올랐던 것은 고상한 풍경의 감동 따위가 아니라 그저 어딘가로 혼자 떠나는 데 있었다. 세고비아는 그런 의미에서 이미 나에게 감동을 안길 숙명의 땅이었다. --- p.17
나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메마른 대지의 풍경이 좋다. 땅으로부터 불쑥 솟아올라 붉은 속살을 드러내 주변을 단번에 장악해버린 거대한 돌덩어리들. 그들은 거칠고 힘차며 주변에 동요하지 않는다. 퇴적된 수억 년의 시간과 단절을 선언하고, 마치 불시착한 외계의 운석처럼 사선으로 벌판에 처박혀 있다.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덧없게 만드는 그 막막하고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풍광. 내겐 이 황량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스페인 자연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질이다. 이것은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과 성격을 납득하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영국의 미학자 존 버거John Berger가 화가 벨라스케스의 작품 ‘이솝Esopo’에서 한 촌부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거칠고 웅장한 자연을 엿보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p.41
여행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낯선 세상에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가혹행위다. 걷고, 참고, 다투고, 기다리고, 배고프고, 피곤하다. 그래서 평소엔 별것도 아닌 주위의 작은 요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만다. 동행자의 성깔과 까탈, 구수한지 구린지 헷갈리는 향토 음식, 고립적인 지역의 언어와 문화, 예상대로 예보를 빗겨가는 날씨 그리고 여행자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 등등. 이 모든 것이 여행의 성패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빼어난 금수강산이라도 직접 가보지 못한 이에게는 방구석에 걸린 사진만 못한 법이다. 나는 그 가운데 유난히 날씨에 민감한 편이다. 새파란 하늘 아래라면 어디든지 즐겁고, 먹구름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내 방만 못하다. 학교 후배들이 하필 장마철에 산 세바스띠안San Sebastian 해변을 다녀와서는 “왜 모두가 산 세바스띠안을 예찬하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다!”라며 한 달 동안 흥분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 p.47
꼰수에그라 에스빠르떼로Espartero 풍차 앞에 걸터앉아 지평선 저 끝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의 작은 소리들이 바람결에 내 귓가에까지 실려온다. 여인의 춤동작에 장단을 맞추려는 노랫가락, 골목에서 친구를 찾는 아이들의 고함,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엔진소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상을 굽어보는 느낌이 문득 옛날 외가댁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더불어 잊고 있던 작은 감성들을 일깨운다. 풍차가 놓여진 산등성이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억새들이 바람에 파도 일듯 일렁거리고 나비들은 그 물결 위로 팔랑팔랑 춤을 춘다. 창녕 암자의 나비가 추던 것이 승무라면 이곳 나비들은 플라맹고처럼 하늘을 난다. 머리 위의 태양도, 바람도, 구름도, 내 마음도 모두 술렁이며 움직인다. 정작 움직여야 할 풍차의 날개들은 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에도 조금의 미동도 없다.--- p.69
보통 복잡하게 엉켜 있는 골목들을 설명할 때 ‘거미줄’ 같다고 말한다. 아라곤의 알바라씬이 그랬다. 그런데 알깔라 델 후까르의 경우는 가로 구조상 악보를 적는 ‘오선지’가 더 적당한 표현 같다. 마을이 후까르 강을 따라 길게 형성되다 보니 길들이 오선처럼 강과 평행하게 켜를 이루며 위아래로 반복된다. 대략 10개의 길이 마을 머리서부터 꽁무니까지 쭉 평행하게 가로로 이어지고, 그 길들을 간신히 한 명 정도 지날 수 있는 작은 골목들이 드문드문 세로로 연결한다. --- p.80
그의 첫 인상은 말 그대로 혹성탈출이었다. 지구상의 것으로 보기엔 너무 기이한 암석들이 주변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어떻게 서로 다른 바위들이 누가 자를 대고 깎아놓은 듯 이렇게 동일한 가로 줄무늬를 가질 수 있을까? 바위 하나만 보면 사람이 깎았다고 믿겠지만 이 주변을 모두 둘러본다면 이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마주한 이 돌무더기의 근원을 과학적 사고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했다. 그냥 신학의 창조론적 사고로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속 편했다. 방문객센터에는 1억 6천만 년에 걸친 이 지형의 생성과정이 논리적으로 전시되어 있지만 수십 년에 불과한 내 찰나의 시간으로 이를 가늠하기엔 벅찰 따름이었다. 정리하자면, 쥐라기시대 바다의 침전지형이 지각변동으로 해수면 위에 드러났고, 이 지형에 쌓여 있던 3가지 성질의 석회암층이 대기에 노출되면서 각각 다른 속도로 산화와 풍화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중간에 빙하기를 거치면서 어쩌고저쩌고 했다던데 지질학자가 아닌 나는 그저 머리만 아파왔다. --- p.119
론다는 한마디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메인요리 하나만 달랑 나오는 양식이 아니라 여러 반찬을 고루 갖춘 한식 밥상이다. 그래서 골목들을 기웃거리면 반찬격인 작은 재미들을 두루 발견할 수 있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기 전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에서 왼쪽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지형차를 이용한 꾸엔까 정원Jardines de Cuenca이 나온다. 사실 정원 자체는 보잘것없으나 협곡과 누에보 다리를 바라보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계단식 정원은 협곡의 측면을 따라서 비에호 다리Puente Viejo까지 이어진다. 이 다리 옆에는 또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 14세기 아랍목욕탕Banos Arabes이 남아 있다. 그 내부를 잘 살펴보니 독특하게 별모양 천장마다 전구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목요일부터 토요일 사이엔 저녁 10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상상해보자.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와 아랍 음악이 잔잔하게 새어나오고, 천장에선 별빛들이 짙은 어둠을 가르며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 p.137
수만 년 전 인류에게 이런 네르하 동굴은 그들의 집이자 무덤이었으며 동시에 하나의 신전이었다. 이 모든 것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는 42,000만 년 전의 동굴벽화가 헤라클레스 기둥의 홀Sala de Las Columnas de Hercules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말, 산양, 물고기, 새 등을 그린 이 동굴벽화는 아쉽게도 가이드와 함께 동굴탐험 장비를 갖춰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라는 그들의 주장이 아직 학계의 정설로 인정된 것은 아니니 ‘믿거나 말거나’는 여행자의 몫이다. 어째든 1959년 1월 12일 박쥐를 찾아 나선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우연히 발견한 이 동굴은 네르하의 운명과 이곳의 고고학적 역사마저 바꿔버렸다. 1960년대까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네르하가 마르지 않는 금광을 발견한 셈이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지중해의 낭만을 대표하는 지금의 새하얀 해안가 풍경도 아마 없을지 모른다. 해변만을 기대했던 나에게도 네르하 동굴은 마을의 인상과 이번 여행의 가치를 180도 바꿔놓은 중요한 기제였다. --- p.166
마을에서 가장 인상 깊은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손가락으로 내 발밑을 가리킬 것이다. 광장에서부터 작은 골목까지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마을의 소담한 자갈길. 거리를 빼곡히 메운 이 주먹만 한 자갈들이야말로 마을을 빛내는 숨은 주인공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이를 밟고 다녔는지 자갈에는 왁스로 낸 광택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맴돈다. 마요르 광장에서 산따 훌리아나 교회Colegiata de Santa Juliana로 이어지는 깐똔 길C/ Canton의 기막힌 풍취도 이 자갈길 없이는 어림없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존재를 몰랐을 때 내가 산띠야나 델 마르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도 바로 이 골목길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나는 자갈길을 나는 꽃밭을 거닐 때처럼 사뿐히 걸어갔다.--- p.205
혹자는 여행을 통해 본연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것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나의 기억과 삶이 오롯이 배어 있는 시끌벅적한 도시다. 나를 그리움에 눈물짓게 하는 것도 시골의 흙내가 아니라 도시의 쾌쾌한 매연일 것이다. 자연이 모든 인간의 근원이자 회귀점이라는 사상은 19세기의 이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도시라는 개인의 실존적 공간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게 가능할까?
스페인 작은 마을 여행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도리어 진정한 나를 버리고 떠나는 여행이자 본연의 자아를 지우기 위한 여정이다. 있지도 않은 나를 찾으려는 작위적인 고민도 떨쳐버리고, 나는 누구일까라는 과도한 자의식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영토 속으로 내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바에서나 혹은 광활한 바다 앞에서 자기 생각은 그만하고 눈과 의식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저 멀리 우주까지 말이다 --- p.234
도시라는 인간의 인공 환경이 유난히 똥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수북이 쌓인 똥 무더기가 나중엔 땅을 이루고 그것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오니 그 아름다움의 본질이 똥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풀밭에 앉아 똥 덩어리 너머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니 팔자에도 없는 이런 우주적 사고에 또 그새 젖어들었다. 이건 시골마을을 여행하며 얻은 내 병이다. 마드리드로 돌아가며 또 금세 잊고 개똥이 널린 풀밭을 피해 콘크리트 바닥에 앉겠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나도 이 풍경처럼 똥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고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p.248
마을의 멋과 정취도 사람처럼 제각기 다르기 마련인데 까다께스야말로 그 형처럼 촌스러운 멋이 일품인 마을이다. 이곳은 상업화된 휴양지도 아니고 곱고 넓은 백사장을 가진 해변도 아니다. 언뜻 볼품없는 작은 어촌 같으면서도 해안 구석구석 작은 해변들 이 들어서 있다. 네르하처럼 세련된 해변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소 거칠고 투박하며 촌스러운 잡동사니들이 어울려 마을을 이룬다.
‘달리의 집La Casa Museo Dali’을 보라! 그야말로 잡동사니와 어처구니의 완결판이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마을의 전경이 여느 지중해 마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까다께스에는 산토리니처럼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매년 미백하듯 유지되는 새하얗고 새파란 색의 조화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따 마리아C/ Santa Maria 골목의 바닥포장도 듬성듬성 돌을 심은 것이 다고, 어느 골목에는 길바닥에 박힌 큰 바위를 그대로 두기도 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거칠면서도 정감 어린 풍경이다. 그러나 까다께스에도 이런 편안함과 포근함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까다께스의 대표적 명소 ‘달리의 집’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입장 과정의 까다로움 때문이다. --- p.278
일탈을 기대하고 떠나는 여행에서 우리는 이따금 다시 일상과 맞닿은 장소에 도달하곤 한다. 이번 올롯 여행이 내게 그랬다. 숲, 화산, 오름, 돌무지 익숙지도 낯설지도 않은 4가지 땅의 풍경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띠었지만 내게 친숙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친구가 내준 빈 방 덕에 모처럼 호텔 신세를 면했으니 올롯은 더욱 내 집처럼 편안했다. 저녁에는 그의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식사로 호의호식하였으니 그야말로 일상보다 더 일상 같은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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