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이라는 말과는 달리 마흔이 되면 인생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더 이상 앞만 보고 달릴 일이 아니다. 뒤를 돌아봐야 앞길이 열린다. 나이 마흔에 새삼스레 역사책을 넘기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가 다시 찾는 역사는 사실의 퇴적물이 아니다. 그것은 막막한 우리 삶에 한 줄기 빛을 던져 주는 지혜의 보고다. ---p.5
유연하고 균형 잡힌 지도력,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광개토대왕이 아니었다면 고구려의 발전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마흔이란 광개토대왕의 이런 지혜가 필요한 나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려 해도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지금 있는 자리에 안주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세심하게 주변을 관찰하여 적합한 방식으로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구해야 할 광개토대왕의 지혜인 것이다. ---p.29
크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당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철석같은 의지를 가졌지만, 그가 처한 시대적 환경은 그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였다. 마흔이란 나이는 자신의 자그만 인생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을 수도 있는 시절이다. 그러나 연개소문처럼 목표에 갇히고 만다면 도리어 낭패다. 더 크게, 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후계자를 제대로 키울 수도 없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도 불가능하다. ---p.41
왕건의 왕건다움은 누구보다도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는 점에 있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늘 그의 출발점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호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을 위협하던 적국의 왕 견훤까지도 왕건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중략)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신에게 몰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사물에 혹하지 않는 길이요, 큰 뜻을 이루는 지름길은 아닐까. ---p.77
광해군은 어렵게 출발했지만 끝까지 왕으로서 성심성의껏 정치에 전념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신중했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국제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왕조의 국가적 이익을 제대로 방어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옥좌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포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에는 누구나 내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 사람만 바라보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주변을 널리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광대한 우주에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겠는가. 우리는 여럿이되 결국 하나가 아닌가. ---p.191
우리도 살아가면서 ‘인생의 멘토’를 말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길은 자신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안목으로 제 갈 길을 닦는 것이 때로 초라하고 지나치게 소박해 보일지 몰라도, 자유와 창의는 아마 그 곳에 있을 것이다. ---p.216
마흔이면 우리 어깨가 조금은 처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용기를 내자. 경상남도 봉하마을 출신의 한 상고생이 인생의 험로를 뚫고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듯, 우리도 우리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보자. 늦깎이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