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써 주는 사람 찾기가 힘드니 내가 써야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독하게 취향 타는 글들을 아껴 주시고 재미있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신 후 돌아서서 조금이라도 여운에 잠기고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면 기쁘겠습니다. 힘든 일, 답답한 일도 많으시겠지만 언제나 웃음 잃지 마시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 출간작 『메시아(Messiah)』 『홍사(紅絲)』 『바이올렛 엠블렘(Violet Emblem)』 『화영(花影)』 『하늘 창』-아랑개비 첫 번째 단편집 『일요일의 장미』
“제 먼데이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저번에 뵀을 때 분명히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못 들으셨나 보군요.” “…네에?” 그제야 로위나는 공주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쌍안경이며 공주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신전 기사단 부속 사관학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오싹하는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설마 그럴 리가. 먼데이 후보를 뽑아 추천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추기경단의 고유 권한이었다. 아무리 공주가 먼데이의 주군 될 썬데이(Sunday)라 할지라도 그 전통을 쉽게 무시할 수는― “설마 진짜로 멋대로 선정해 버리신 겁니까아?!” 그 말에 돌아오는 방긋거리는 미소에 로위나는 자신의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패닉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예의 그 방긋거리는 미소를 지우지도 않은 채 공주가 말했다. “로위나,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게 먼데이가 생긴다면 그건 ‘그 분’일 것이라고 정해 왔어요.” 여유로운, 느릿하기까지 한 어조로 공주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추기경들이 먼데이 후보를 뽑아 올리는 것은 분명 오래된 전통이지만 궁극적인 선택권은 썬데이에게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키란체이스 추기경께는 치즈라도 한 상자 보내드리도록 하세요. 난청에 좋다고 하더군요.” “공주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추기경에게 치즈를 들고 갔다가는 박살이 나는 건 그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로위나의 애타는 마음은 알아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공주는 유유히 다시 시선을 돌려 첨탑 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성도(聖都) 시온의 길가에는 흰 색과 연보라색의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공주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바람을 따라 달콤한 향기가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