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혜숙 (ruru100@yes24.com)
한일 어업 협정이나 남북한 정상 회담같이 거창한 명목이 붙지 않아도, 이를테면 상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실랑이, 연인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나 부모 자식간의 갈등,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미묘한 긴장까지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한 모든 과정을 우리는 협상이라 부를 수 있다.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한 협상 자문까지 맡으며 사십 여년 동안 수천 개의 협상을 이루어 낸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이 쓴 『협상의 법칙』은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안내 지침서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협상은 비즈니스 세계의 회의 테이블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를 구입할 때, 남의 도움을 구할 때, 아이들을 대할 때, 까다로운 상사를 대할 때에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을 상대하고 있는 책인 만큼 전문적 개념을 철저히 배제한 채 정찰제 매장에서 냉장고를 구입하는 일, 연봉 협상, 호텔 예약 등 주변의 익숙한 예시를 들고 있어 수월하게 읽힌다.
저자는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정보와 힘을 사용하는 일, 즉 협상을 잘 하려면 당연히 협상의 핵심 포인트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뛰어난 협상 기술은 이론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학문이 아니며 공식적인 권위를 가져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역사상 최고의 협상가로 드는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 권력이나 공식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상황을 지배했고,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목표와 기준을 가지고, 여러 협상의 접근 방식을 본성대로 사용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양자 모두를 승리로 이끈 윤리의 협상가였다.
마치 이야기를 하듯 협상의 방법을 풀어 나가는 저자는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과 자신의 경험담을 직접 소개하며 협상에서 자주 쓰이는 전략을 하나 둘 소개해 나간다. 미끼 던지기, 반대자들 다루기, 감정 전술 등 협상의 세부적인 가르침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해 힘과 정보, 시간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협상에서 이기기 위해선 자신감을 갖는 일이 중요함을 먼저 강조한다. 자신이 지닌 힘의 범위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면 실제로 영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으며, 자신과 상대에 대한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정찰제 매장의 가격표는 하나님이 프린터로 찍어놓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같이 어떠한 원칙도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협상의 법칙』은 크고 작은 협상의 법칙과 테크닉을 소개하고 있지만 협상이란 어디까지나 상황에 대한 적절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일인 만큼 결국 `글자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지식한 보좌신부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상황에 따른 중용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일화다.
첫 미사에 두려움을 느낀 새로 온 신부는 주임신부에게 도움을 청했고, 주임 신부는 신도들을 휘어잡으려면 성경이 살아나올 수 있게, 오늘날 신도들의 개인적 경험처럼 느끼게 젊은이들의 언어를 쓰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다음 날, 주임신부는 새로 온 신부의 미사를 듣고, 몇 가지 실수를 지적해 준다.
`도표에 나타난 최고 열 두 가지'가 아니라 십계명이다.
`십이 다스'가 아니라 열 두 제자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故) J.C라고 하지 않는다
성부와 성자, 성신을 `큰아버지, 아들, 유령'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고지식한 대응에 대한 단적인 예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에 대한 활용 역시 이를 넘을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상황을 다 가정하여 보여줄 수도 없으며 결국 협상이란 `바로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무수한 협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략적 삶을 위한 태도를 배우는 것은 윤택한 삶을 가꾸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어차피 원하는 것을 포기하며 살고 싶지 않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협상의 지혜를 좀더 주의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