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서 ‘바흐ein Bach’라는 남성 명사는 시냇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흐 이전의 서양 음악이 빗물이라면, 그 빗물이 모여서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시초가 바흐라는 작고 깊은 샘물이다. 나의 대학 시절 바이올린 선생님은 늘 바흐 이후의 서양음악은 바흐로부터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서양음악을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제일 먼저 바흐를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 샘의 깊이를 단번에 알 수는 없다. 모차르트를 듣다 돌아와 다시 듣고, 쇼팽을 듣다 돌아와 다시 듣고, 평생 바흐를 들으며 그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바흐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에게조차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할 집이면서, 끝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존재이다. --- p.53
영웅 교향곡의 첫 두 음은 아마도 신호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봉건 질서 아래 억압 받았던 민중에게 자유와 희망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일 수도 있고, 음악사적으로 보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흔히 바흐를 수학자에 비유한다. 수학은 숫자를 쫓는 학문이지만, 그 숫자로 우주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무궁무진한 학문이다. 바흐는 음표만을 쫓았지만, 그 음표들로 수많은 단어들이 무색할 우주처럼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바흐가 ‘음악의 수학자’였다면, 베토벤은 ‘음악의 철학자’이다. 음악이 순수한 음표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처럼 감정을 갖고, 그 안에서 인간의 이상을 표현해 나가는 것이 베토벤의 음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호탄이 의미하는 두 가지는 서로 일맥상통한다. 인류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는 음악이 시작되는 신호탄인 것이다. --- p.63-p64
내가 조지 거슈윈의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곡들이 갖는 장르를 초월하는 유연성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클래식과 재즈, 뮤지컬로 나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한 곡 한 곡이 연주자에 따라 클래식도 되고 재즈도 되고 그 중간의 어떤 것도 다 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유명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서머타임〉을 예로 들면, 엘라 피츠제럴드 등 유명한 재즈 가수들이 부를 때면 영락없는 재즈이지만, 레온틴 프라이스, 캐슬린 배틀 등 클래식 발성법을 사용하는 오페라 가수가 부르는 〈서머타임〉은 오페라 아리아가 된다. 거슈윈이 1920년대에 파리로 건너가 그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모리스 라벨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을 때 라벨은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워야겠다”며 거절했는데 거절의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가르침을 받으면 거슈윈의 음악 속에 흐르는 재즈의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 p.101
칼라스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예쁜 것도 아니고, 때론 꺽꺽거리는 소리지만, 그 목소리가 서러운 여주인공의 마음을 더 없이 서럽게 노래할 때면, 듣는 이도 함께 꺽꺽거리며 울게 된다.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를 지닌 칼라스는 그 목소리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였고, 목소리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칼라스가 15분 정도 길이의 ‘광란의 장면’을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걸어 다니는 목소리 박물관’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희한한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순간순간 요동치듯 변하는 감정의 폭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게 바로 칼라스의 마술이고 그 마술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소리가 별로 곱지 못해도, 오히려 그 소리에 반해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것이다. --- p.137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야기를 하려면 스페인이 낳은 불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바흐는 생전에 작곡가로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이 사후에 많이 잊혀졌다. 멘델스존, 슈만 등 낭만시대 작곡가들이 본격적으로 바흐의 음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있었으나, 그래도 무반주로 연주하는 첼로는 여전히 찬밥 신세였고, 슈만은 여기에 피아노 반주를 만들어 붙일 정도였으니 이 위대한 독주 음악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잘스가 10대 시절 한 고서적 상에서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그때는 카잘스 자신도 이렇게 큰 파장을 몰고 올지 몰랐을 것이다. --- p.196
나는 정경화를 마녀, 호랑이, 불꽃 등의 강렬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부르거나, 젊은 시절과 근래의 음악 세계를 이분하여 공격적인 젊은 시절과 부드러워진 근래의 음악이라고 단정 짓는 이야기들을 매우 싫어한다. 그녀의 음악은 공격적이면서 따스하고, 불꽃같으면서 달콤하다. 물론 젊은 시절에 비해 소리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그 정도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많은 연주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음악은 한두 개의 단어로 설명이 힘들 만큼 복합적이고 언제 어느 모습이 분출될지 모를 만큼 변화무쌍하다. 그녀를 ‘마녀’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 세계를 한정하는 행위이며, 그녀의 작은 손이 일궈낸 넓고 깊은 예술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 p.258-259
킨리사이드는 어려서부터 운동에도 소질을 보여 운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고난도의 스턴트를 곁들인 연기도 서슴지 않는데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파파게노로 출연했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노래를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넘어지고 부딪히는 연기를 곁들여 관객들의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겨울 나그네》 전에도 그는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과 여러 차례 다른 공연을 했는데, 한 번은 무용수들과 공중으로 휙 뛰어 올랐다가 내려와서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을 너무 높이 날아 공중에서 첫 음을 시작했고, 트리샤 브라운 단장은 공연 후 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무용수보다 높이 뛰지 마세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런 그이기에 그냥 서서 불러도 힘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춤을 추며 부를 수 있었다.
---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