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총 10편의 비극, 17편의 희극, 10편의 사극으로 나뉘는 희곡들, 장시들과 소네트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은 다시 시대별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챔벌린 극단(Lord Chamberlin’s Men)’과 ‘킹스멘 극단(King’s Men, 국왕 극단)’을 통해 발표했다. 또 셰익스피어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셰익스피어가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보다 우위에 서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고, 이야기를 멋지게 포장해서 내놓을 줄 아는 연출가였다. 다양한 이야기를 한데 묶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만들어 내고, 갈등을 명쾌하게 해결해내는 셰익스피어의 소질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특히 그가 사용하는 언어유희는 대단한 것들이어서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음악과도 같은 탄력과 유연성을 지닌다. 그래서인지 발음하면서 읽을 때와 눈으로 읽을 때, 또 공연을 볼 때마다 각각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p.6

『햄릿』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한 명의 주인공에게 치우쳐 읽다가는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햄릿』에는 햄릿 외에도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 우선 선왕을 죽였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클로디어스의 경우, 관객이나 독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악(惡)’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과연 그를 악한 존재로만 규정할 수 있는가? 햄릿의 편에 서서 본다면 클로디어스가 악의적인 인물로 해석될 수 있으나 거트루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p.21

셰익스피어가 창조해 낸 여성 인물 중 최악의 여인을 고르라면 레이디 맥베스(맥베스의 부인)를 꼽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악녀, 악처’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녀가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엇갈린 평을 받고 있다. 레이디 맥베스가 일개 악녀 취급을 받아왔던 데는 극의 구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맥베스』는 극의 전개가 빠르고 교묘한 대사로 일관되어 있는데다가 신비한 존재들까지 등장해 레이디 맥베스라는 인물을 따로 떼어내어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에게 살인을 사주하는 부인의 이미지는 너무나 부정적인 것이므로 그녀를 분석해 봐야 ‘악녀’ 또는 ‘살인마’의 이미지만 더욱 공고히 될 것이라는 선입견도 한몫 했을 것이다. ---p.65

셰익스피어가 최고의 문호로 꼽히는 것은 그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한 경제학자가 “와튼스쿨 재학 당시 배운 경제학 관련 강의보다 학부 시절 수강한 셰익스피어 강의가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 것처럼 셰익스피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의 모든 계층의 인간 군상을 연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한 계층이나 한 인물만을 변호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드러내놓고 어느 한 인물을 변호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 인물을 비꼬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 그의 표현력은 어떠한가? 운문과 산문, 말장난, 심오한 글귀가 혼재되어 있는 그의 언어는 영어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